항목 ID | GC025004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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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城郭 |
영어음역 | Seonggwak |
영어의미역 | Fortres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집필자 | 여성구 |
[정의]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적의 습격을 막기 위해 흙이나 돌로 쌓았던 구조물.
[개설]
안산시의 성곽은 읍성과 산성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안산읍성은 고려 후기에 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성벽의 일부만 남아 있다. 안산은 서해안의 요지였기 때문에 외적 방어를 위한 산성이 많이 축조되었다. 현재 조사된 것으로는 성곡산성, 목내산성, 성태산성, 테미산성, 별망성 등이 있다. 해안가를 따라 성곡산성-목내산성-별망성이 있고, 내륙에는 성태산성-테미산성이 있었다. 현재 거의 소실되었으며, 별망성 일부가 복원되었다. 안산의 규모에 비해 많은 산성이 있다는 것은 이 지역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음을 알려준다.
[구분]
읍성이 배후에 산을 끼고 쌓은 평산성(平山城)이라면, 성곡성·목내성·성태성·테미성 등은 산꼭대기 주위를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고, 별망성은 계곡을 낀 봉우리를 둘러쌓은 포곡식의 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성벽의 재료에 따라 나뉠 때 읍성은 외면은 돌로 쌓고, 내면은 흙과 잡석을 쌓아올린 토석 혼축성이고, 성곡성·목내성은 토성이며, 별망성·성태성·테미성은 석성이다.
[읍성]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 위치한 읍성은 북쪽으로 해발 395m인 수암봉을 의지하고 남쪽으로 평지를 감싼 평산성이다. 축조 시기는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던 고려 후기 이후에 해안가보다는 좀 더 안전한 이곳에 읍성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성벽 일부는 외면만을 석축하고 안쪽은 흙과 잡석으로 쌓아 올린 토석 혼축 공법을 사용하였다. 축성 당시 읍성은 전체 둘레 772.2m로 북벽 219.4m, 동벽 180.6m, 서벽 174.7m, 남벽 197.5m이며, 높이는 대략 3~4m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벽은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어내려 왔는데, 정상부로부터 절반 정도는 잘 남아 있으나 남쪽은 무덤과 도로 등으로 훼손되어 있다. 특히 서벽은 2중으로 성벽을 쌓았는데, 이곳이 주요 방어 지역이었음을 보여준다. 북서쪽 정상부에는 장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벽은 정상부에서 서쪽으로 연결되는 수암봉의 능선을 이용하여 쌓았는데, 성벽의 상태가 가장 양호하다.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높이 1.8m, 하단부 폭 3m 정도이다. 남벽은 민가가 들어서 거의 파괴된 상태이다. 읍성은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곳으로 안산의 중심지였다. 현재 읍성 안에서는 조선시대의 안산관아로 사용되다가 일제 강점기에 수암면사무소로 이용되던 건물터와 함께 성문 시설의 유구도 발견되었다.
[산성]
1. 해안가 산성
삼국시대에 서해안 방어를 위해 해안가를 끼고 쌓은 산성으로는 성곡산성과 목내산성, 그리고 별망성이 있다.
1) 성곡산성
성곡동에 위치한 성곡산성은 20세기 중반까지 성두산[해봉산]에 약 360m 정도의 흙으로 쌓은 보루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있다. 고구려의 장항구현의 치소가 있었던 곳으로 비정되기도 한다.
2) 목내산성
목내산성은 목내동을 중심으로 주위의 산 능선을 연결하는 자연적인 지형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1978년 조사 당시 높이는 2~3m, 폭은 위쪽이 2m, 아래쪽이 5m 정도 남아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2m 높이의 토축만이 일부 남아 있다. 이곳은 조선 문종의 비인 현덕왕후의 소릉이 자리할 정도로 왕실에서 중시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들 산성은 남양만과 당성이 있는 화성 송산면 일대까지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며, 남양만의 해로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북쪽은 시흥시의 군자산성과도 가깝게 있어 삼국시대 해안 방어 거점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3) 별망성
단원구 초지동에 위치한 별망성은 독립봉 정상에서 해안선을 따라 양쪽 골짜기 사이를 돌로 쌓은 해안 산성이다. 기록에 의하면 둘레 1,040m, 높이 1.2~2.1m라고 하는데, 임진왜란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거의 파괴되었다. 현재는 일부 복원하여 높이 1.45m, 길이 225m 정도만 남았다.
산성 안에서 군영(軍營)의 흔적을 보여주는 터가 발견되었는데, 이곳을 15세기 문종 때 설치된 수군 만호영 터로 추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만호부가 주로 왜구의 침입이 잦은 지역에 설치되던 병영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17세기 중반의 효종 때 서해안 경비를 위해 초지량영이 이곳에 설치되었고, 얼마 되지 않아 강화도로 옮겨갔지만 이곳을 1초지, 강화도 것을 2초지라고 불렀다.
2. 내륙 산성
해안가의 산성이 성곡산성과 목내산성이라면 내륙의 산성은 성태산성과 테미산성을 들 수 있다. 축조 시기는 출토 유물이 없어 확언하기 어려우나 주변 산성들과의 관련성을 볼 때 삼국시대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산성은 1.2㎞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인천·수원·과천 방향으로 이어지는 교통로 상에 자리하고 있다. 해발고도는 높지 않지만 해안선과 육로를 동시에 관망할 수 있으며, 서쪽으로 군자산성, 정왕봉·오이도 봉수와도 연결되는 위치를 점하고 있다.
상록구 일동에 위치한 성태산성은 수리산에서 나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서쪽으로 뻗어내린 산 정상부를 에워싼 전형적인 테뫼식 산성이다. 테미산성 역시 반월동 산 정상부를 에워싼 타원형의 테뫼식 산성이다. 북쪽과 동쪽은 자연 절벽을 이용하였으며 서쪽은 매우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남동쪽은 평지를 이루고 있으며, 이곳에 건물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의 전체 둘레는 450m 정도이며, 성벽은 대부분 무너져 내렸다. 이상의 성곽들을 살펴볼 때 안산 지역은 대중국 무역로인 남양만의 관문에 해당되는 지역으로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남양만을 방어하는 서해안의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