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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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木內山城 |
영어음역 | Moknaesanseong |
영어의미역 | Moknaesanseong Fortres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목내동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여성구 |
성격 | 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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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토성 |
건립시기/연도 | 삼국시대 |
높이 | 2~3m[폭은 위쪽이 2m, 아래쪽이 5m]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목내동 |
소유자 | 안산시 |
[정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목내동에 있는 삼국시대 토성.
[개설]
1978년 9월 반월공업지구 개발 지역 안에 있는 문화유적 조사의 일환으로 단국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성의 정확한 구조 및 축조 연대를 알 수는 없지만 삼국시대 이후 서해안의 경비를 담당하는 기능을 가진 성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건립경위]
목내산성은 지역 방어 및 해안 경비를 목적으로 쌓은 성으로 추정된다.
[형태]
목내산성은 목내동을 중심으로 주위의 산 능선을 따라 쌓았는데, 목내동과 초지동 사이의 표고 40~73m 야산의 능선, 목내동과 성곡동 사이에 표고 48~93.8m의 산 능선, 그리고 목내동 입구에 위치한 성안[표고 87m] 등을 연결하는 자연적인 지형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현황]
1978년 발굴 조사 당시 높이는 2~3m, 폭은 위쪽이 2m, 아래쪽이 5m 정도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성벽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도로 건설로 인한 능선의 절단면에 성벽으로 보이는 2m 높이의 토축만이 남아 있다. 산성을 따라 삼국시대의 토기편과 통일신라시대의 인화문 토기편, 고려·조선시대의 와편과 토기·자기·청동 유물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을 통해 볼 때 목내산성은 안산 사람들의 주요 생활터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예전부터 목내산성 안에는 마을이 있었으며, 남쪽은 능안마을이고 북쪽은 성안마을이다. 능안마을이라는 이름은 15세기 중엽 이곳에 소릉[조선 문종의 비인 현덕왕후의 능]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성안마을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거주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의의와 평가]
현재 목내동 성터는 반월공단 조성 이후 지형이 많이 변하여 거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실정이다. 산성 서쪽으로 올라가 보면 성곡동과 멀리 서해안 및 남쪽으로 바다가 보인다. 목내성은 화성에 있는 당성과 마주보고 있으며, 별망성 터와 성곡동 성터 사이에 있어 이들과도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북쪽으로 군자산 산성이 있어 삼국시대 남양만의 해로 확보 등 해안 방어의 거점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이유로 목내성이 장구현의 치소가 있었던 곳으로 비정되기도 하나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욱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