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4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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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地理志 |
영어음역 | Jiriji |
영어의미역 | a Geography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집필자 | 김창현 |
[정의]
경기도 안산 지역의 인문환경 및 자연환경을 비롯하여 지역 정보에 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책.
[개설]
전 근대 사회에서 특정 지역의 정보를 손쉽게 알 수 있는 자료로는 지리지와 읍지가 대표적이다. 지리지는 전국을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편찬한 것이고, 읍지는 각 군현 단위로 편찬한 것이다. 지리지를 전국 지리지라고 한다면, 읍지는 군현 단위의 지리지라고 할 수 있다.
전국 단위의 대표적인 지리지로는 『삼국사기(三國史記)』·『고려사(高麗史)』·『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여지도서(輿地圖書)』·『대동지지(大東地志)』 등이 있다. 또한 읍지는 각 군현에서 작성한 것을 도에서 수합하여 도별로 정리한 전국 읍지가 있고, 군현별로 분리된 군현의 읍지가 있다. 안산 지역의 읍지도 여러 종류가 전한다. 이들 지리지와 읍지는 특정 지역의 역사와 문화의 변천 사항을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편찬]
지리지는 편찬 주체에 따라 관찬(官撰) 지리지와 사찬(私撰) 지리지로 구분된다. 관찬 지리지는 보통 국가 통치를 위한 자료 수집을 위해 편찬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삼국사기』·『고려사』·『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 등으로, 이들 지리지는 국가가 주도하여 만든 전국 단위의 지리지이다. 그러나 16세기 후반부터 지리지의 양식이 변화하여 개인 주도로 지리지와 읍지가 제작되고 활성화되었다. 특히 16세기 이후로 편찬된 읍지가 1천여 종에 달하고 있을 만큼 읍지는 조선 후기의 지리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지리지]
1. 『삼국사기』「지리지」
현재의 안산 지역과 관련한 내용이 서술된 최초의 지리지는 『삼국사기』「지리지」이다. 안산 지역에 대하여 『삼국사기』「지리지」에는 “장구군(獐口郡)은 본래 고구려의 장항구현(獐項口縣)이었는데 경덕왕 때 개명한 것으로 지금의 안산현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안산은 장항구현-장구군-안산현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고려사』「지리지」
『고려사』「지리지」에는 고구려의 장항구현이 통일신라 경덕왕 때 장구군으로 개칭되었다가 고려 전기에 안산군으로, 1018년(현종 9)에는 수주(水州)에 합속되었다가 후에 감무를 두어 독립하였으며, 1308년(충렬왕 34)에는 문종의 탄생지라 하여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이처럼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지리지」는 군현의 연혁이나 지명 변동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이 대단히 소략하다.
3. 『세종실록지리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비해 팔도제 등 군현제가 발전했던 조선시대에는 각 군현에 대한 정보가 상세하게 기록되는 추세를 보인다. 이는 조선 전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의 내용을 통해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이를 보면 이전의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지리지」에서 서술했던 것보다 연혁이 더 자세하고, 이전에는 없었던 사방 경계와 호수·군정·성씨·토지·토산물·역진 등도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되어 있는 안산 지역 관련 내용의 일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호수가 300단(單) 2호, 인구가 588명이요, 군정(軍丁)은 시위군(侍衛軍)이 1명, 선군(船軍)이 115명이다. 토성(土姓)이 3이니 김(金)·안(安)·방(方) 이요, 망성(亡姓)이 1이니 임(林)이다. 땅은 기름지고 메마른 것이 반반 되며, 민속(民俗)이 어염(魚鹽)으로써 생계를 삼는다. 간전(墾田)은 2,289결(結)이다. 논이 9분의 3이 된다. 토의(土宜)는 오곡(五穀)과 조·팥·메밀·삼[麻]이요, 토공(土貢)은 지초이며, 약재(藥材)는 연밥이다. 염소(鹽所)가 5이요, 어량(魚梁)이 5이다. 주로 송어가 나며, 또는 민어·숭어·조기·농어·참치·홍어·큰새우·중새우·모시조개[黃蛤]·미네굴[土花]·굴·낙지가 난다.”
이처럼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후대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읍지와 같이 건치연혁이나 호수 등의 항목을 목록화하여 별도로 서술하고 있지는 않지만 형식면에서는 거의 비슷한 양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조세의 수취와 관련된 호수와 인구수, 군정 수, 토지에 관련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는 지리지의 편찬 목적이 각 군현의 인적·물적 자원의 파악에 있었기 때문이다.
4. 『신증동국여지승람』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각 군현별로 방대한 내용의 정보를 담고 있고, 항목별로 분류하여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 각 군현별로 서술 내용에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 안산현에 대해서는 건치연혁·관원·군명·성씨·형승·산천·토산·관방·봉수·학교·역원·불우·사묘·총묘·고적·명환·인물·제영 등 18개 항목으로 구분하여 서술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경우 이전의 인구·경지 면적·물산 등 사회 경제적 내용이 제외되거나 대폭 삭감된 반면, 학교·인물·제영 등 문화적인 내용이 증가하여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발전을 반영한 지리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간행 이후 전국 지리지의 편찬은 국가 주도로 몇 차례 시도되었지만 완성을 보지 못하고, 대신 개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류형원(柳馨遠)의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지지(大東地志)』와 같은 것이 대표적인 것이다.
[읍지]
16세기 중엽 이후 각 군현 단위의 지리지인 읍지 편찬이 활성화되었다. 읍지는 초기에는 사찬 읍지가 활성화되다가 점차로 관찬 읍지가 주가 되었다. 읍지의 체제는 일정한 항목을 설정하고 그 지역에 해당하는 사항을 서술하는 방식이었다. 항목 수는 각 군현에 따라 20여 항목으로부터 80여 항목에 이른다.
현재의 안산 지역에 대한 읍지는 여러 종류가 남아 있는데, 1900년에 작성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의 『안산군읍지』를 보면 연혁(沿革)·방리(坊里)·결총(結摠)·호구(戶口)·환총(還摠)·풍속(風俗)·고적(古蹟)·토산(土産)·인물(人物)·충신(忠臣)·효자(孝子)·열녀(烈女)·효부(孝婦)·명환(名宦)·능침전(陵寢殿)·사찰(寺刹)·성첩봉수(城堞烽燧)·산천명승(山川名勝)·제영(題詠)·선생안(先生案) 등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듯 지리지와 읍지는 각 지방의 보다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자료로서 각 군현의 자연환경·역사·문화·민속·재정(財政) 등 지역사 연구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