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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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明安公主御製致祭文碑 |
영어의미역 | Grave Monument of Princess Myeongan |
이칭/별칭 | 명안공주묘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 산 4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준호 |
성격 | 비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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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720년경 |
관련인물 | 숙종|명안공주|오태주 |
재질 | 석재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 산 42 |
[정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에 있는 조선 후기 명안공주와 부마 오태주의 어제치제문비.
[개설]
명안공주어제치제문비(明安公主御製致祭文碑)는 숙종이 누이 명안공주와 부마 오태주의 죽음을 애도하며 내린 어제치제문을 새겨 놓은 비석이다. 숙종의 누이가 되는 명안공주(明安公主)는 현종과 김우명(金佑明)의 딸인 명성왕후(明聖王后)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명안공주에게는 두 명의 언니가 있었으나 이들이 모두 일찍 죽자, 명안공주가 현종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명안공주는 1679년(숙종 5) 판서 오두인(吳斗寅)의 아들인 오태주(吳泰周)와 혼인하였다. 명안공주 관련 유물로는 이밖에도 각종 고문서 등이 강원도 강릉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건립경위]
명안공주와 오태주 사후 숙종이 어제치제문을 내렸는데, 이 묘비는 오태주의 묘갈이 세워지는 1720년(숙종 46)경 치제문을 비석에 새겨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금석문]
비문의 전면에 1716년 숙종이 내관 장세상(張世相)을 보내 오태주를 애도한 글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1681년 여관(女官)을 보내 명안공주를 애도한 글이 새겨져 있다. 전면에서 숙종은 “……어머니 명성왕후가 당시 부마를 맞아들일 때 그의 나이는 어리지만 일찍이 지각이 트이고 학업의 성취됨을 보고 부마로 잘 골라 뽑으셨는데, 지닌 재주와 뜻을 다 펴지도 못하고 50세도 되지 않아 혼연히 세상을 떠났으니 안타까운 심정 눈물만 흐른다.”고 애도했다.
뒷면의 명안공주에 대한 치제문에서는 “……언니 명선과 명혜가 잇달아 죽음에 엄청난 슬픔을 가누지 못했는데, 이제 배필을 만나는 예를 올려서 화락한 금슬을 이루고 장수를 누릴 것을 기약했는데, 하루아침에 이와 같은 기별을 듣다니…… 유유한 나의 정으로 그대를 일찍 영결하려니 소리쳐도 응함이 없고 불러도 대답이 없거늘, 저 푸른 것이 하늘인데 어찌 차마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환하고 밝은 세상을 버리고 저 어둡고 캄캄한 세상을 향해 가니, 천장지구토록 이 애통한 심정 감내하기 어렵다.”라며 죽음에 대해 애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