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6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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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民逸 |
영어음역 | Yun Minil |
이칭/별칭 | 현세(顯世),지산(芝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창현 |
[정의]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현세(顯世), 호는 지산(芝山). 증조부는 영평위(鈴平尉) 윤섭(尹燮), 할아버지는 윤지함(尹之諴), 아버지는 호조좌랑 윤엄(尹儼), 어머니는 예조판서 김주(金澍)의 딸이다.
[활동사항]
윤민일은 형 윤민헌(尹民獻)과 같이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88년(선조 21) 생원과 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59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후 성균관전적을 거쳐 1601년 병조좌랑과 예조좌랑을 역임하고 이듬해 사헌부지평으로 세자시강원문학을 겸하였다. 이때 정인홍(鄭仁弘)이 이미 죽은 성혼(成渾)의 관작을 추탈할 것을 모의하자 스승인 성혼의 신구(伸救)를 상소하다가 수원판관으로 좌천되었다.
1603년 예조정랑이 되고 다음해 개성부경력을 역임한 뒤 합천군수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609년(광해군 1) 성균관전적으로 춘추관기사관을 겸하면서 『선조실록(宣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618년 동래부사가 되고, 1627년(인조 5) 관직을 사임한 뒤로는 고향인 안산에서 수년 동안 한거하다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