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626 |
---|---|
한자 | 尹民獻 |
영어음역 | Yun Minheon |
이칭/별칭 | 익세(翼世),태비(苔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창현 |
[정의]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익세(翼世), 호는 태비(苔扉). 증조부는 영평위(鈴平尉) 윤섭(尹燮), 할아버지는 윤지함(尹之諴), 아버지는 호조좌랑 윤엄(尹儼), 어머니는 예조판서 김주(金澍)의 딸이다.
[활동사항]
윤민헌은 동생 윤민일(尹民逸)과 같이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88년(선조 21)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문음으로 선공감역(繕工監役)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였다. 1609년(광해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속하였다. 이듬해 성균관전적이 된 뒤 형조좌랑을 거쳐 1612년 전라도도사로 전임되었다.
1613년 형조정랑으로 춘추관기주관을 겸하였고, 광해군의 난정이 계속되자 외직을 자청하여 괴산군수로 나갔다가 파직되었다. 1617년 장악원첨정으로 재기용되었다가 그해 가을 성균관사성에 올랐으나 부당한 인사라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체직(遞職)되었다. 1618년 대동찰방(大同察訪)이 되었으나 얼마 뒤 파직당하였으며 이때부터 안산에 퇴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군자감정에 임명되고, 사헌부장령과 내섬시정을 거쳐 평안도절도사로 나갔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났을 때 공주로 왕을 호종한 공으로 통정대부에 오르고,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공조참의에 이르러 병으로 사직한 후 안산으로 돌아와 세상을 떠났다. 윤민헌은 경사(經史)에 밝고 시문에 능하였으며 또 조맹부(趙孟頫)를 사숙(私淑)하여 해서(楷書)를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