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9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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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鹽業 |
영어음역 | Yeomeop |
영어의미역 | Salt Manufacture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김창현,신대광 |
[정의]
경기도 안산시의 산업 중 소금을 제조하는 업종.
[개설]
소금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무기질 중 하나이며 음식의 맛을 내는 조미료로서 오랫동안 이용되어 왔다. 인류가 소금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000년경으로 추정된다. 유목생활을 하던 원시시대에는 우유나 고기를 먹음으로써 그 속에 들어있는 소금 성분을 자연스럽게 섭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차 농경사회로 바뀌면서 식생활이 곡류나 채소를 위주로 하게 되어 따로 소금을 섭취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소금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특히 삼국시대 백제의 경우 서해안의 소금루트를 따라 영토를 확대해 나가기도 했으며 이는 중국과의 교류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조선시대에도 소금을 제조하는 염업은 면업, 광업과 더불어 당시 경제 체제를 지탱하는 3대 기간산업의 하나였다. 따라서 한반도의 중서부에 위치한 서해안 지역의 안산은 소금생산과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강화, 인천, 김포 등과 더불어 한반도 중서부 서해안의 중요한 소금생산지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변천]
안산 지역에서 언제부터 염업이 시작되었는지 확실치는 않다. 다만 해안을 끼고 있고 자연조건이 좋아 일찍부터 염업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안산 지역에 5개의 염소(鹽所)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한양의 소금 집산지는 마포였는데 경기도 남양염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충청도 서산염이 많았으며, 그 밖에 안산·인천·김포 등지의 소금이 소비되었다고 하였다.
특히 현재 안산시에 속하는 남양 대부도의 소금은 질과 양에서 우수하여 왜구와 권세가들이 눈독을 들였고, 대부도 목장을 관리하던 사복시와 남양부사가 염세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일이 빈번할 정도였다. 이러한 피해는 염부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 1900년 남양 대부도 염민들은 관리들이 임의로 염장에서 세금을 거두지 못하도록 의정부에 호소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활성화 되던 안산 지역의 염업은 조선 후기에 들어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제염업은 땔감을 사용하여 소금을 생산하는 자염(煮鹽)[또는 화염이라고도 한다]에 의한 염업이었다. 그러나 중국 산동성 등지의 천일제염이 값싼 가격으로 수입되자 조선 말기에 이르러 자염에 의한 염업은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당시 안산 지역의 염장도 재래식 제염법인 땔감을 사용하여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얻어내는 자염이었기 때문에 경제성이 낮아 천일염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천일염은 일제 침략의 일환으로 1908년 일본인이 중국인 기술자를 고용하여 주안에 1정보 규모의 시험용 염전을 만든 데서 비롯되었다. 그 후 1921년에는 남동염전이, 1925년에는 군자염전이, 1935년에 소래염전이 각각 생겨났으며 현 안산 지역에 속하는 군자염전은 면적이 1.82㎢로 당시 경기도 최대의 염전이었다. 군자염전 축조사업이 대규모로 이루어질 당시에 평안도 용강 등지의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주해 오면서 취락으로 발전했는데, 군자역 뒤편은 군자염전 염부들이 이사와 사는 곳이라 하여 염전사택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한편 천일염전이 확산되는 추세에도 불구, 현 안산 지역에 속하는 대부도와 남양만 일대에서는 한국전쟁 전후까지 여전히 자염이 생산되었으며 대표적인 자염 생산지는 대부동, 대부동동, 벌공동 등이었다. 이중 동동 지역의 자염은 1950년대 동주염전이 조성되면서 천일염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안산 지역의 염전들은 국토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점차 사라지고 말았다. 군자염전은 시화지구개발 토지에 수용되어 1980년대에 소금 생산이 중단되었고, 안산염전과 사리염전도 1987년 시화지구개발사업으로 해수 취입이 불가능해져 소금 생산이 중단되었다.
안산염전은 해방 후인 1950년 염전 면적 223,865㎡로 소금 제조를 시작했으나 36년 만에 문을 닫았으며, 안산시 사동에 있었던 사리염전은 1954년 104,714㎡로 소금 제조를 시작했으나 안산염전과 마찬가지로 해수 취입이 어려워 1987년 폐업하였다.
현재 안산 지역에는 1994년 안산시로 편입된 대부도의 염전에서 소금이 생산되어 그 명맥을 잇고 있지만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1996년 대부도의 소금 생산량은 6,370톤으로 1980년의 19,265톤에 비해 33% 정도에 지나지 않고 염전의 면적이나 종업원도 매년 감소 추세에 있다.
1997년 소금 수입의 자유화, 인력난과 인건비 상승, 규모의 영세성 등으로 염업은 갈수록 사양 산업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염업조합은 5개년 계획[1997~2001]으로 염안전기금을 조성하여 염전에 대한 허가 폐지 보상을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제염이 조성되었던 안산 지역 부근의 염전이 국토 개발의 명목으로 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