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15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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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貞羲先生-孝子門 |
영어의미역 | The Dutiful Son Entrance of Hong Jeonhwi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현우 |
[정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에서 효자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홍정희 선생의 효자문」은 안산시 향토유적 제19호로 지정된 흘곶동의 홍정희(洪貞羲) 효자문(孝子門)에 대한 이야기로 설화이기 보다는 실제 이야기인 효성담이다. 실제로 그의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고종이 효자정문을 하사했다고 한다.
[채록/수집상황]
1985년 옹진군에서 옹진군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으며, 후손 홍범의로부터 이야기를 채록한 것이다.
[내용]
대부도 남4리 흘곶에는 홍정희의 효자문이 있다. 그 내력을 살펴보면 조선 후기인 18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마을을 ‘흘곶’이라 불러 왔는데, 옛날에는 문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풍어의 기쁨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홍정희는 남양홍씨로 대대로 이곳에서 살아왔는데 가정이 화목하고 이웃과 우애가 깊었다. 홍정희는 특히 효성이 지극하여 타의 귀감이 되었다.
홍정희는 부친이 별세하자 초상을 잘 치렀을 뿐만 아니라 무덤 옆에 띳집을 짓고 3년 동안을 거처하였다. 육식은 피하고 소찬으로 일관했으며, 집으로 내려오는 일 없이 묘소를 지켰다. 이러한 그의 효행이 마침내 조정에까지 알려져 1893년(고종 30) 6월 효자정문을 하사받게 되었다. 효자정문은 팔각지붕에 기와를 올린 홑처마 건물인데, 개수되어 현재는 형태만 전한다. 규모는 정면 3.20m, 측면 1.35m이며, 벽은 시멘트 구조이다. 지금도 후손들이 기거하며 홍정희의 효성을 이어받고 있다.
[모티프 분석]
「홍정희 선생의 효자문」의 주요 모티프는 ‘효성이 타의 귀감’, ‘3년의 시묘살이’ 등이다. 이는 대부남동 흘곶마을[남4리]에 있는 홍정희 효자문에 대한 이야기로, 현재 후손인 홍범의 집 입구에 효자정각이 세워져 있다. 효의 근본을 알게 하는 귀중한 효행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