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3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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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牙州 |
영어공식명칭 | A-ju |
이칭/별칭 | 영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명진 |
[정의]
고려 전기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개설]
아주(牙州)는 고려 전기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관내에 있던 행정구역 중 하나이다. 곡교천 북쪽 지대가 당시 아주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아주는 백제시대 아술현(牙述縣)으로 불렸는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 경덕왕이 음봉현(陰峰縣)[음잠현(陰岑縣)이라고도 함]이라 이름을 고쳤다. 936년(태조 19) 9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940년(태조 23) 음봉현 자리에 인주(仁州)를 설치하였다. 1018년(현종 9) 천안부(天安府)의 속현이 되었으며, 뒤에 ‘아주’로 이름을 고치고 감무(監務)를 두었다.
[관련 기록]
『고려사』 지리지 아주조에 의하면, "고려 초에 인주로 고쳤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아산현(牙山縣)조에 의하면, "고려 초에 인주로 고쳤다. … 현종 9년에 천안부(天安府)로 붙였다가 뒤에 아주로 고쳐 감무를 두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 김정호(金正浩)가 펴낸 지리서 『대동지지』 아산조에 의하면,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인주로 고쳤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따라서 아주는 940년에 인주라 하였다가 1018년 이후 설치된 행정구역임을 알 수 있다.
[내용]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었던 아주는 백제시대 이래 국가의 변천에 따라 행정구역 이름이 바뀌면서 존속해 왔다. 백제시대 아술현, 신라시대 음봉현, 고려 전기 인주, 고려 현종 9년 이후의 어느 때에 아주라 하였다. 그런데 태조 왕건이 즉위한 918년(태조 원년) 아주 지역 책임자로 김행도(金行濤)가 파견되었다. 김행도의 직책은 동남도초토사(東南道招討使)·지아주제군사(知牙州諸軍事)였다. 따라서 김행도의 직책에 나와 있듯이 ‘아주’라는 지명은 918년부터 이미 쓰여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려 전기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관내에는 행정구역이 3곳 있었다. 대체적인 범위는 곡교천을 기준으로 그 이남 동편에 온수군(溫水郡)이 있었으며 곡교천 이남 서편에는 신창현(新昌縣)이, 곡교천 이북에는 아주(牙州)가 있었다.
[변천]
백제시대에 아술현이었다가 백제가 멸망한 후에 신라 경덕왕이 음봉현으로 고쳤다. 고려 전기 940년에는 인주로 개칭하였다가 1018년 이후 어느 때에 아주라 하였다. 조선 전기 군현제 개편으로 인하여 1413년(태종 13) 아산현이라 하였다. 한편, 고려 성종 때에 별호(別號)로 영인(寧仁)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