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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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湯井館 |
영어공식명칭 | Tangjeong In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1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형열 |
설립 시기/일시 | 1935년 - 탕정관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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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시기/일시 | 1950년 - 탕정관에서 임시수도육군병원으로 변경 |
개칭 시기/일시 | 1951년 - 임시수도육군병원에서 임시구호병원으로 개칭 |
개칭 시기/일시 | 1952년 - 임시구호병원에서 국립온양구호병원으로 개칭 |
최초 설립지 | 탕정관 -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1동 |
성격 | 숙박시설 |
설립자 | 데구치 야사부로[出口彌三郞]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동에 있었던 목욕 숙박 시설.
[개설]
온양온천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시대에는 온정(溫井), 고려시대에는 온수(溫水), 조선시대 이후에는 온양(溫陽)이라 불리며 1300여 년의 역사를 이어 왔다. 왕이 머물던 온궁(溫宮)이 훼손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의 일이다. 일제는 온궁 터에 근대식 온천 숙박시설을 지었고, 1927년에는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朝鮮京南鐵道株式會社)가 경영하던 신정관(神井館)과 일본인 소유의 탕정관(湯井館)이 운영되었다. 광복 이후 옛 온궁 터의 온천장들은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거듭하면서 지금의 온천지구를 형성하였다.
[설립 목적]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면 온천리에 거주하던 일본인 데구치 야사부로[出口彌三郞]는 온천공(溫泉孔) 시굴에 적극적이었는데, 1933년 지금의 아산시 온양1동에서 300여 척(尺)[약 90m]을 굴착해 섭씨 53도의 천맥(泉脈)을 발굴하였다. 데구치 야사부로는 거금 10만 원을 들여 대욕탕을 겸비한 호텔을 짓기로 하고, 1935년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건축을 마치고 ‘탕정관’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변천]
탕정관은 일본식과 서양식이 혼합된 2층 목조건물로 1층 159평[약 525.6㎡], 2층 151평[약 499.2㎡], 남녀 대욕탕 512평[약 1,692.6㎡]으로 운영되었다. 광복 이후 적산(敵産)으로 분류되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정부 재산으로 귀속되었다. 1949년 육군 13연대, 18연대가 주둔하였고 6·25전쟁 당시 임시수도육군병원이 되었다. 1951년 보건부 산하 귀환 장정 임시구호병원으로 바뀌었다가, 1952년 국립온양구호병원으로 정식 승격되었다. 휴전 이후 온천장 기능 복원과 병원 기능 유지를 둘러싼 공방이 계속되다가, 1960년대 이후 데구치 야사부로의 한국인 아내가 관리권을 되찾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일제강점기에는 욕장[대욕탕, 가족탕], 여관, 대연회장, 식당 등을 운영하였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