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4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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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土幕舍 |
영어공식명칭 | Mud Hut |
이칭/별칭 | 흙벽돌집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선장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홍구 |
소재지 | 선장 토막사 -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 선창3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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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둔포 토막사 -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운용3리 |
[정의]
6·25전쟁 당시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머무르던 피난민들이 임시로 거주하던 거처.
[개설]
6·25전쟁 당시 아산 지역에는 피난민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특히 1951년 1·4후퇴를 전후한 피난민의 남하 과정에서 아산 지역은 주요 피난 경로 중의 한 곳이었다. 전쟁 초기 북한 인민군의 주요 남침 경로가 천안~대전 가도[지금의 국도 1호선]였으므로 전쟁의 주요 지역에서 비껴 있기도 했지만, 충청남도에서 남쪽으로 이동할 수 있는 도로가 지나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산시를 중심으로 종(縱)으로는 경기도 평택시와 충청남도 공주시로 나갈 수 있으며, 횡(橫)으로는 천안시와 예산군으로 나갈 수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요인으로 아산은 피난민들이 많이 거쳐 가는 곳이었다.
1·4후퇴 전후의 시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제일 추운 혹한기였으므로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반드시 찾아야만 했다. 아산으로 피난을 온 피난민들은 피난을 간 원주민들이 살던 집이나 창고 등을 임시 거처로 활용하여 추위를 피하였다. 하지만 면소재지 등의 중심지에서 벗어난 한적한 시골 마을이나 폭격을 당한 곳 등에서는 건물을 찾을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곳에 머물던 피난민들은 직접 거처를 마련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토막사(土幕舍)였다. 토막사는 흙으로 벽돌을 급하게 만들어 흙벽돌을 쌓아 만든 집이었다.
아산 지역의 대표적인 토막사는 두 곳이 있다. 한 곳은 둔포면 운용3리이며, 다른 한 곳은 선장면 선창3리이다. 운용3리는 면소재지인 둔포면 둔포리에서 약 3㎞, 선창3리는 면소재지인 선장면 군덕리에서 약 1.5㎞에 떨어져 있는 곳으로 건물이 드문 곳이었다. 이에 피난민들이 직접 집을 지어 살아야 했다. 피난민들은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흙을 가지고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짓고 살았다. 현재도 두 마을에는 ‘토막사’라는 지명이 남아 있어 피난민들이 흙벽돌집을 짓고 살았던 곳임을 알려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