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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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避難民收容所 |
영어공식명칭 | Refugee Camp |
이칭/별칭 | 모종리 수용소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홍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51년 - 모종리에 피난민 수용소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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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피난민촌 - 충청남도 아산시 모종동 588-1 |
소재지 | 토막사 -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운용3리 |선장면 선창3리 |
[정의]
6·25전쟁 당시 피난민들을 위해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만들어진 수용소.
[개설]
6·25전쟁 당시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는 피난민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특히 1951년 1·4후퇴를 전후한 피난민의 남하 과정에서 아산 지역은 주요 피난 경로 중의 한 곳이었다. 전쟁 초기 북한 인민군의 주요 남침 경로가 천안~대전 가도[현재 국도 1호선]였으므로 전쟁의 주요 지역에서 비껴 있기도 했지만, 아산 지역은 충청남도에서 남쪽으로 이동할 수 있는 주요 도로가 지나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산시를 중심으로 남북 방향으로 북쪽의 경기도 평택시, 남쪽의 충청남도 공주시로 이어져 있으며, 동서 방향으로는 천안시와 예산군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지정학적 요인으로 아산 지역은 피난민들이 많이 거쳐 가는 곳이었다.
1950년 말 정부에서는 피난민의 이동 장소를 구체적으로 지정하였다. 38도선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은 충청남도와 전라남도·전라북도,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서 떠난 피난민 중 일반인은 전라남도·전라북도, 그 이외의 사람은 경상남도·경상북도로 가도록 정하였다. 충청남도에서는 아산군을 비롯하여 예산군, 당진군 등 12곳을 피난지로 지정하였다. 그중 당시 아산군에서 피난민을 수용한 곳은 탕정면 모종리였다. 탕정면 모종리는 1973년 온양읍에 편입되었고, 1986년 온양읍이 온양시로 승격 분리되었다가, 1995년 도농복합시 출범 이후 아산시 모종동으로 바뀌었다.
1951년 5월 발표된 피난민 수에서 아산 지역에는 약 20만 명이 모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특히 1·4후퇴로 인해 내려온 38도선 이북 사람들이 많았다. 정부는 전쟁이 38도선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만 벌어지게 되자 피난민들의 귀환을 위한 대책을 세우고자 하여 38도선 이남의 피난민은 원거주지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러나 전쟁 상황으로 38도선 이북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피난민들은 피난 지역에 계속 머물도록 조치하였다. 이들은 아산에 점차 머물면서 정착하게 되었다. 이북5도민회가 구성되었고, 피난민들을 상대로 하는 사업이 성하였다. 생계를 위해 인근 농촌으로 품을 팔러다니는 사람도 많았고, 특히 피난민 중 된장을 만들어 시장 근처 골목에서 파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된장 골목’이 생겼다.
온양동신초등학교 서쪽 일대를 흔히 ‘수용소’라 불렀고, 최근까지 비슷한 형태의 가옥 수십 동이 이어져 그 흔적이 남아 있었으나 재개발을 위해 2018년부터 철거가 진행되고 있어서 곧 사라질 상황이다. 아산시 둔포면 운용3리와 선장면 선창3리에는 ‘토막사’라는 지명이 있는데, 피난민들이 잔디나 풀이 있는 흙을 벽돌보다 큼직하게 떠서 벽체를 쌓아 집을 지었던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