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539 |
---|---|
한자 | 無名山城 |
영어공식명칭 | Mumyeongsanseong Fortres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신수리 |
집필자 | 서정석 |
현 소재지 | 무명산성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신수리 산43 |
---|---|
성격 | 산성 |
양식 | 테뫼식 석축 산성 |
크기(높이,길이,둘레) | 190m[둘레]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신수리의 무명산에 있는 시기 미상의 석축 산성.
[개설]
무명산성(無名山城)은 음봉면 신수리와 염치읍 동정리의 경계를 이루는 무명산(無名山)[250.5m] 정상에 축조되어 있는 산성이다.
[건립 경위]
무명산성은 축성 시기와 경위도 알 수 없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는 평택성(平澤城)이 무명산성을 가리키는 것인지, 영인산성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고려시대 몽골 침입 시 평택 사람들이 난을 피하여 입보(入保)[보(堡) 안에 들어와 보호를 받음]하였다고 해서 ‘평택성’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당시 평택성은 남북으로 두 개의 성이 연접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영인산성은 하나의 성으로 이루어진 반면에 무명산성은 산봉우리 2개가 연접해 있고, 그중 보통 무명산성이라 하는 것은 북봉에 있는 석성(石城)을 가리키기 때문에 무명산성이 평택성일 가능성이 높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위치]
무명산성은 무명산 정상부에 있다. 국도 45호선 충무로의 동정삼거리에서 왼쪽[서쪽] 길로 접어들어 염치저수지 북서쪽의 염치읍 동정리를 지나 북쪽으로 올라갈 수 있다. 또한 국도 39호선 아산로의 서원삼거리에서 오른쪽[동쪽]으로 접어든 뒤 100여m를 가서 다시 오른쪽 샛길을 따라 산길로 2.3㎞ 올라가서 정상 근처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다른 산성과는 달리 전망이 매우 좋지 못한 편으로, 남쪽만이 염치저수지와 동정리가 약간 내려다보일 뿐 나머지 동·서·북쪽은 산으로 막혀 있다. 이는 주변에 있는 영인산성과 백암리산성, 물한산성과는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형태]
무명산성은 무명산 정상부의 9부 능선 정도를 둘러싸며 축조된 전형적인 테뫼식 석축(石築) 산성이다. 지형으로 인해 남북 방향으로 긴 타원형이며 둘레 190m의 작은 산성이다. 제대로 남아 있는 성벽이 없어서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남벽은 편축식(片築式), 북벽은 협축식(夾築式)으로 축조한 것으로 보이며 경사가 심한 서벽은 성벽 형태 자체가 확인되지 않아 토축(土築)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편축식은 절벽을 그대로 이용하여 바깥쪽만 쌓는 방식이고, 협축식은 성벽의 안과 바깥을 모두 쌓는 방식이다.
남아 있는 남벽을 보면 기저부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약간씩 안으로 들여쌓기를 하면서 축조하고 있다. 성벽 축조에 사용된 성돌(城-)은 자연 할석(割石)[쪼갠 돌]이며, 크기와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자연 할석을 불규칙한 돌을 사용하여 가로·세로줄눈이 일정하지 않게 흩뜨려 쌓는 허튼층쌓기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또한 남벽과 서벽이 만나는 곳은 성벽의 외면을 곡면으로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성과 관련된 부대시설은 발견되지 않으며, 성내에서는 건물지로 보이는 평탄면도 찾기 어렵다. 다만 북벽에 나 있는 통행로가 북문지일 가능성은 있다.
[현황]
무명산성의 성벽 대부분은 붕괴되었으며, 남벽 쪽 약 30m와 서북벽 약 10m 정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아울러 성내에서 삿자리 모양의 무늬[승석문(繩席紋)]와 바둑판 모양의 무늬[격자문(格子紋)]가 새겨진 토기 조각이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건물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수습된 유물이 소량이어서 정확한 시대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의의와 평가]
무명산성은 주변을 조망하기에는 매우 좋지 않은 입지조건이다. 따라서 축조 목적을 알 수 없으며 혹시 피난용은 아닐까 추정해 보는 정도이다. 산성이 있는 곳의 남쪽 봉우리에 대한 정밀 조사를 통해 산성의 축조 목적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