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100637
한자 五敎臺盤石
영어공식명칭 Ogyodae Rock
이칭/별칭 아산 오교대 반석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구성리 355-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홍승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오교대 반석 -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구성리 355-1 지도보기
성격 너럭바위
관련 인물 김구
크기(높이,길이,둘레) 3m[둘레]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구성리에 있는 너럭바위.

[개설]

오교대(五敎臺) 반석(盤石)은 조선시대 초기의 문신 김구(金鉤)와 연관된다. 김구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직지(直之), 호는 송정(松亭)·귀산(歸山), 시호는 문장(文長)이다. ‘귀산’은 지금의 아산시 영인면 구성1리를 의미한다. 김구는 경사(經史)에 정통하였으며,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김구는 당대의 대표적 학자로서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으로 재임하면서 많은 후학을 길러내었고 훗날 대제학(大提學)에 이르렀다. 그러나 단종이 즉위한 후 나라의 어지러움을 한탄하며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귀산에 은거하였다. 세조는 대제학에 제수하여 조정에 나설 것을 명하였으나 무려 아홉 번에 걸쳐 사양을 하고, 말년에 오교대를 축조하여 인재 양성에 몰두하였다.

오교대김구의 후손인 김정봉이 1937년 관련 기록을 수집하고 시문을 모아 『귀산 김선생 실기(龜山金先生實記)』를 펴냄으로써 내용이 밝혀졌다. 『귀산 김선생 실기』의 내용 중 1817년(순조 17)에 간행된 『근재집(近齋集)』이라는 문집의 저자 박윤원(朴胤源)이 「오교대기(五敎臺記)」를 수록하여 그 실체가 알려졌는데, 현재 오교대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유일하게 반석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건립 경위]

『귀산 김선생 실기』에 실려 있는 「오교대 팔경」에는 8절로 된 다음과 같은 시제의 시가 등장한다.

고용산 명월(高聳山明月)

월앙산 청풍(月仰山淸風)

영인산 귀운(靈仁山歸雲)

구산촌 반석(龜山村盤石)

영해안 낙조(泳海岸落照)

공세지 모연(貢稅地暮烟)

백석포 귀범(白石浦歸帆)

신성포 조석(新星浦潮汐)

총 8가지 시제의 시가 전해지는데, 이 중에서 네 번째 ‘구산촌 반석’이 오교대 반석으로 추측하고 있다.

[위치]

오교대 반석의 원래 위치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구성리에 있는 화황사 앞마을의 민가 텃밭 중앙에 있다.

[현황]

오교대 반석에 정자를 지어 교육장으로 사용하였다고 하나, 지름이 약 3m에 불과하기 때문에 반석 위에 정자를 짓기는 불가능하며 인근에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때 반석 주위에는 연못이 있었으나 현재는 개인 텃밭의 한가운데에 있다.

[의의와 평가]

「오교대 팔경」은 해, 달, 구름, 안개, 노을 등과 같은 자연의 풍경을 언급한 것으로 그 가운데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반석이 유일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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