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639 |
---|---|
한자 | 李舜臣亂中日記-書簡帖壬辰狀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제장명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의 현충사 충무공이순신기념관에 있는 조선 후기 이순신의 일기 등 고문헌.
[개설]
이순신 난중일기(亂中日記) 및 서간첩(書簡帖) 임진장초(壬辰狀草)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전란 중에 틈틈이 쓴 이순신의 친필 일기와 친척들에게 보낸 편지, 조정에 보낸 장계의 초본 등을 이르는 명칭이다. 일괄하여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보로 재지정되었다. 이 중 ‘난중일기’는 본래의 명칭은 아니며 1795년(정조 19)에 왕명으로 『충무공전서』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편의상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형태]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는 『난중일기』 7책, 『서간첩』 1책, 『임진장초』 1책으로 모두 9책이다.
[구성/내용]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는 난중일기, 서간첩, 임진장초 등 모두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난중일기(亂中日記)』는 이순신이 남긴 7책의 친필본 일기를 말하며, 해당하는 해의 간지를 써서 이름을 붙였다. 제1권은 『임진일기(壬辰日記)』로, 1592년(선조 25) 5월 1일부터 1593년(선조 26) 3월까지 27매, 제2권은 『계사일기(癸巳日記)』로, 1593년(선조 26) 5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30매, 제3권은 『갑오일기(甲午日記)』로 1594년(선조 27) 1월 1일부터 7월 28일까지 52매, 제4권은 『병신일기(丙申日記)』로 1596년(선조 29) 1월 1일부터 10월 11일까지 41매, 제5권은 『정유일기(丁酉日記)』로 1597년(선조 30) 4월 1일부터 10월 8일까지 27매, 제6권은 『정유일기 속(丁酉日記 續)』으로 흔히 ‘속정유일기’라고 하며, 1597년 8월 4일부터 1598년(선조 31) 1월 4일까지 20매이다. 겉장이 없고 첫 장에 ‘정유(丁酉)’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일기 내용은 정유에서 무술 정초에 이르고 있고 『정유일기』와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 후일에 다시 정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7권은 『무술일기(戊戌日記)』로 1592년(선조 31) 9월 15일부터 10월 7일까지 8매로 구성되어 있다.
『서간첩(書簡帖)』은 이순신이 친척들에게 친필로 보낸 편지를 후대에 수집하여 만든 책의 이름이다. 서간첩의 크기는 가로 44㎝, 세로 33㎝이며, 내용은 한문 초서체로 씌어 있다. 일종의 사사로운 편지지만, 능란한 필체와 넘쳐흐르는 인정미는 읽는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이순신의 편지는 『충무공전서』에 총 9편이 전해지는데, 이 서간첩에는 조카에게 보낸 편지 1통, 현감역[현건]에게 보낸 3통과 현지평 또는 현정랑[현덕승]에게 보낸 3통 등 연주현씨 가문의 지인에게 보낸 편지 6통과 큰아들 이회가 현감역에게 보낸 편지 등 총 8편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순신의 10세손 이규대(李奎大)가 자신의 조부 이우권이 전라병마우후로 재직 시 전라남도 영암의 연주현씨 가문에 300년간 대대로 전해지던 이순신의 서간을 입수하여 첩으로 만들어 종가가 보관 전승하게 한 경위를 적고 있다. 감역 현건과 지평 현덕승은 이순신의 외가 쪽 친척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순신과 서로 교류하던 사이였다.
『임진장초(壬辰狀草)』는 임진왜란 중에 이순신이 조정에 장계(狀啓)한 글을 『계본등록』의 예에 따라 다른 사람이 따로 옮겨 적은 것을 모은 책이다. 주요 전투의 출전 경과 및 전과를 비롯하여 일본군의 정세, 군사상의 건의, 수군 진영의 현황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소중한 사료이다. 이순신의 친필은 아니지만, 임진왜란과 이순신을 연구하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
표지 왼쪽에 ‘임진장초(壬辰狀草)’라는 제목이, 오른쪽 위에는 ‘만력20년(萬曆二十年)’이라는 연도가 쓰여 있으며, 지면에는 여러 곳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인(全羅左道水軍節度使印)’이라는 네모난 주인(朱印)이 찍혀 있다. 초본의 글씨는 해서(楷書)로 반듯하게 쓰여 있으며, 책장은 모두 81장이다. 내용은 1592년 4월 15일자 계본(啓本)을 시작으로, 동궁[세자 광해군]으로부터 적을 무찌르라는 명령을 담은 서장을 받았다고 아뢰는 1594년 1월 15일자 장달(狀達)까지 3년 치 61편이 수록되어 있다. 크기는 가로 33.5㎝, 세로 46㎝이다.
『임진장초』 외에 1594년 2월 15일의 계본을 필두로 하여 1594년 4월 20일의 계본으로 끝맺고 있는 12편의 초본이 또 다른 한 책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합치면 이순신이 올린 장계의 초본은 모두 73편이 되는 셈이다. 『충무공전서』에도 장계 71편이 수록되어 있다. 『충무공전서』에 없는 7편을 합하여 현존하는 이순신의 장계는 모두 78편이 확인된다.
[의의와 평가]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시기 전쟁 상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군중 일기로 그 가치가 매우 크며, 특히 최근에는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서 새롭게 그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 『서간첩』은 이순신의 개인적인 사항을 파악하는 데 참고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임진장초』는 『난중일기』에서 간략하게 적어둔 여러 해전에 대해 출전 경과에서부터 참전 함선, 일본군의 상황, 전투 경과 및 성과, 각 장수의 군공 그리고 사망자와 부상자 명단까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임진왜란 해전사를 연구하는 데 다른 매우 중요한 사료가 된다. 또 수군 징발 정책, 둔전 설치, 지체하는 장수에 대한 처벌, 전쟁물자 조달, 진중에서 과거를 개장하는 일 등에 대한 각종 건의와 일본군의 정세, 수군의 현황 등을 담은 각종 보고도 수록되어 있어 그 중요성을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