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1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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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岳-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곽규태 |
시작 시기/일시 | 17~18세기 - 송악두레논매기 이앙법 보급 이후, 만물 논매기 시점인 7월 초·중순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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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 시기/일시 | 1950년 - 송악두레논매기 행사 6·25전쟁 직후 소멸 |
재개 시기/일시 | 2002년 5월 혹은 7월 - 송악두레논매기 행사 재연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7년 - 송악두레논매기 제48회 한국민속예술축제 장려상 수상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1년 - 송악두레논매기 전국농어업인 두레풍물경연대회 은상 수상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2년 - 송악두레논매기 제53회 한국민속예술축제 금상 수상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4년 3월 25일 - 송악풍물두레논매기 충청남도 아산시 무형문화유적 지정 |
의례 장소 | 송악두레논매기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저잣거리 |
성격 | 의례 |
의례 시기/일시 | 7월 초·중순경|마지막 만물 논매기 시점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에서 풍년과 마을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시행된 노동의례.
[개설]
송악두레논매기는 농부의 수고로움을 위로하기 위해 시행되던 의례이자 민속놀이였다. 농부들이 모내기를 마치고 마지막 만물[끝물] 논매기를 할 때 시행하였으며, 마을의 풍년을 기원하는 농신제를 시작으로 모내기, 두레논매기, 지게가마 두레싸움놀이 등의 행사를 벌였다.
[연원 및 변천]
송악두레논매기는 17~18세기 이앙법의 보급과 함께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1960년대 초 벼농사용 제초제가 보급되면서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두레논매기가 사라졌다. 2002년부터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 출신의 박용선[1965년생] 회장의 노력으로 비영리농경문화단체인 송악두레논매기보존회가 고증을 거쳐 2004년 1월부터 연 1회 이를 보존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송악두레논매기보존회는 2007년 제48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충청남도 대표로 출전해 장려상, 2011년 전국농어업인 두레풍물경연대회에서 은상, 2012년 제53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금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송악두레논매기는 2014년 3월 25일 충청남도 아산시 무형문화유적으로 지정되었다.
[절차]
송악두레논매기는 농부들이 모내기한 후 7월경 애벌매기, 이듬매기[논밭을 두 번째 갈거나 매는 일], 만물매기 중 마지막 세 번째인 만물 논매기를 할 때, 술과 음식을 장만해 놓고 풍요를 기원하는 농신제를 지내면서 농사짓는 동안의 수고로움과 피로를 한바탕 풍물장단에 맞춰 풀어버리는 화합 어울림 마당으로, 풍년기원 농신제, 두레논매기, 신명풍장마당 등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송악두레논매기는 우모를 착용하고 호미 없이 논매기를 하며, 굵직하고 투박한 굿거리장단과 퉁퉁이장단, 보릿대춤사위가 기묘하게 어우러져 진행되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지게가마 두레싸움놀이[두레쌈놀이]와 결합한 특색을 보이고, 씨름과 풍물 대결 등으로 의례를 마무리하였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벼농사의 성공을 위해서는 반드시 몇 차례의 김매기[논매기]가 필요했는데, 여름철 노동의 능률을 높이고 풍요의 염원을 담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병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