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1371 |
---|---|
한자 | 牙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승은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이승소가 충청도관찰사 재임 시 충청남도 아산을 주제로 지은 한시.
[저자]
이승소(李承召)[1422~1484]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호는 삼탄(三灘), 본관은 양성(陽城)이다. 1447년(세종 29)에 문과에 급제해 출사하였으며, 세조가 즉위하면서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1471년(성종 2)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되고, 양성군(陽城君)으로 봉해졌다. 1465년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예조판서, 이조판서,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아산」 이 실린 『삼탄집(三灘集)』은 1514년(중종 9) 이승소의 아들 이희(李熙)와 외손자 이수동(李壽童)이 편집·간행한 것으로, 이승소가 충청도관찰사로 재임 시 충청남도 천안, 당진, 서산 등 도내의 여러 고을에 관해 쓴 시가 실려 있는데, 그중 아산에 관한 시가 한 편 전해진다. 권두에는 신용개(申用漑)와 남곤(南袞)의 서문이 있다.
[형태/서지]
「아산」 이 실린 『삼탄집(三灘集)』은 14권 5책의 목판본으로, 성암고서박물관, 서강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아산」은 7언 율시로 이승소의 문집인 『삼탄집(三灘集)』 권4에 전한다.
[구성/내용]
수련(首聯)[한시의 율시(律時)에서 첫째 구(句)와 둘째 구를 이르는 말]은 충청남도 아산이 예로부터 이름난 고을로, 땅이 비옥하고 백성도 많은 지역임을 말하며 시작한다. 함련(頷聯)[한시의 율시에서 셋째 구와 넷째 구를 이르는 말]은 그러한 아산의 풍속이 과거에 비해 낙후되었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한편,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그에 대한 답은 이어지는 경련(頸聯)[한시의 율시에서 다섯째 구와 여섯째 구를 아울러 이르는 말]에서 제시되는데, 한나라 때의 공수(龔遂)와 탁무(卓茂) 같은 어진 관리가 있다면 공자의 노나라나 맹자의 추나라와 같이 문풍을 다시 일으킬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미련(尾聯)[한시의 율시에서 일곱째 구와 여덟째 구를 아울러 이르는 말]에서 객관에 남아 있는 수십 개의 서까래는 흥성했던 과거와 현재를 대비적으로 드러내며, 작자의 시름을 자아낸다. 여기에는 관찰사로서 자신의 책임감 또한 드러나고 있다.
「아산」 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산역시고명구(牙山亦是古名區)[아산 역시 예로부터 이름 있는 고을이라]
토옥민조관일우(土沃民稠冠一隅)[땅 비옥하고 백성 많아 한쪽 지방 으뜸이네]
속상순리심가구(俗尙淳漓深可懼)[백성 풍속 후박 몹시 걱정스러운 것이지만]
읍거흥체갱수우(邑居興替更誰尤)[고을 모습 흥폐 다시 어느 누굴 허물하랴]
한무순리여공탁(恨無循吏如龔卓)[한스러운 건 공탁 같은 어진 수령 없는 탓에]
불견문풍의로추(不見文風擬魯鄒)[노추에게 견줄 만한 문풍을 못 보는 거네]
객관공여영수십(客館空餘楹數十)[객관에는 수십 개의 서까래만 괜히 남아]
부운왕사전유유(浮雲往事轉悠悠)[뜬구름과 같은 옛일 나의 시름 자아내네]
[의의와 평가]
『삼탄집(三灘集)』의 「아산」은 충청남도 아산 지역이 지니는 과거의 명성과 함께 당대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