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6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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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文求 |
이칭/별칭 | 명천(鳴川)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관촌4길 13-11[대천동 387]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홍순창 |
출생 시기/일시 | 1941년 - 이문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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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72년 - 이문구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73년 - 이문구 제5회 한국창작문학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78년 - 이문구 제5회 한국 문학 작가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82년 - 이문구 제1회 신동엽문학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0년 - 이문구 제7회 요산문학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0년 - 이문구 제1회 서라벌 문학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3년 - 이문구 제8회 만해문학상과 제4회 농촌문화상 문예부문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2000년 - 이문구 제31회 동인문학상 수상 |
몰년 시기/일시 | 2003년 - 이문구 사망 |
출생지 | 갈머리[冠村] - 충청남도 보령군 대천면 대천리[보령시 대천2동] 387번지 |
묘소 | 이문구 묘소 -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동 관촌마을 뒷산 |
성격 | 소설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월간문학』, 『한국문학』, 『실천문학』 등의 편집인|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
[정의]
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현대 소설가.
[개설]
소설가 이문구(李文求)[1941~2003]는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과 무분별한 근대화의 과정에서 해체된 농촌 사회의 아픈 세태를 충청남도 지역의 토속적 방언으로 형상화한 소설가이다. 대표작으로 『관촌수필』[1977]과 『우리동네』[1981] 연작 등이 있다.
[활동 사항]
이문구 작가는 1941년 충청남도 보령군 대천면 대천리[현재 보령시 대천2동] 387번지 갈머리[冠村]에서 농·어업과 사법대서사를 겸했던 부친의 5남 1녀 자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향교의 직원(直員)이었던 조부는 그에게 한학적 교양과 가치관을 심어주었다. 부친이 남로당 보령 지역 총책이었던 까닭에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친과 둘째, 셋째 형을 잃었다. 첫째 형은 징용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기에 이문구는 대천중학교를 졸업한 후 상경하여 소년가장 노릇을 하며 학업과 생계를 이어갔다.
1963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이문구는 1965년 9월 ‘연묘’라는 여승의 환속을 다룬 단편 「다갈라 불망비(不忘碑)」과 1966년 「백결(百結)」이 김동리(金東里)[1913~1995]에 의해 『현대문학』에 추천 완료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1970년에 단편소설 「암소」와 공동묘지 이장공사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첫 장편소설 『장한몽(長恨夢)』을 내놓아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의 초기 소설은 도시 체험과 소위 밑바닥 인생들이 ‘몸으로 사는 신산스런 삶’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1972년에는 어촌을 배경으로 한 중편 소설 「해벽(海壁)」을 발표하고 『관촌수필』 연작을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이 작품은 해방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새마을운동에 이르는 시기의 농촌사회를 작가의 회상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데, 사라져 가는 고향의 풍경과 정서를 토속어로 포착해 내고 있는 자전적·회고적 작품이다. 그 뒤를 이어서 발표한 『우리 동네』[1981]는 국가 권력에 억압받고 퇴폐한 도시문화에 찌들어가는 1970년대 농촌 현실을 풍자적으로 다루었다.
『관촌수필』[1977]과 『우리동네』[1981] 연작은 그의 문학적 본령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전쟁과 고향, 농촌과 산업화가 관통한 한국 사회의 빛과 그림자를 살아 꿈틀대는 인물과 그들의 언어로 형상화하였다. 이 작품들은 ‘나무 연작’이라 부를 수 있는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2000]와 함께 이문구의 3대 연작 소설을 이룬다. 한편, 농촌과 세태의 변모를 다룬 장편 『산 너머 남촌』[1990]에 이어 발표한, 주인공이 시대와 불화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 역사소설인 『매월당 김시습』[1992]은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이문구의 작품은 충청도 지역의 방언을 지문에까지 입말투로 사용한 독특한 문체로 일찍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이문구의 연작 소설들은 전통적인 전(傳)의 구조를 띠고 있는데, 대체로 민중의 전을 구연(口演)하여 엮은 형태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전통적이면서도 주체적인 소설 작법으로 형상화한 이문구의 작품들은 국가 권력의 무분별한 근대화에 대한 작가의 비판 정신과 민중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토속적 언어의 가치 재발견을 통해 한국 문학의 다양성과 지평을 넓혔다.
한편, 이문구 작가는 오랫동안 『월간문학』, 『한국문학』, 『실천문학』 등의 편집과 발간 일을 통해 한국문학의 현장을 지켜 왔다. 또한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문단의 좌우를 통합하고 남북의 민간교류에 힘써 왔다. 이문구는 2003년 지병으로 타계하였으며, 자신을 키워준 고향인 관촌마을 뒷산에 영원히 잠들었다.
[저술 및 작품]
이문구의 주요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관촌수필』[문학과지성사, 1977], 『우리 동네』[민음사, 1981] 등과 단편소설 「김탁보전」, 「암소」, 「추야장」, 「장곡리 고욤나무」 등, 그리고 『이문구 전집』[랜덤하우스, 2004]이 있다.
[묘소]
묘소는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동 관촌마을 뒷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문구는 1972년 한국일보문학상, 1973년 제5회 한국창작문학상, 1978년 제5회 한국문학작가상, 1982년 제1회 신동엽문학상, 1990년 제7회 요산문학상, 1992년 제1회 서라벌 문학상, 1993년 제8회 만해문학상과 제4회 농촌문화상 문예부문, 2000년 제31회 동인문학상 등을 각각 수상하였고, 1996년 대통령표창, 2001년 제33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2003년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