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12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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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四可集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사현 |
간행 시기/일시 | 1958년 - 『사가집』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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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연세대학교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신촌동 134] |
성격 | 문집 |
저자 | 유호근 |
간행자 | 김노동 |
권책 | 6권 3책 |
행자 | 12행 25자 |
규격 | 28.5㎝[세로]|18.5㎝[가로] |
어미 |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보령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 유호근의 문집.
[개설]
『사가집(四可集)』은 일제 강점기 의병장 유호근(柳浩根)[1853~1925]의 저작을 모아서 김노동(金魯東)[1899~1958]의 주선으로 신연활자(新鉛活字)로 간행한 문집이다. 문집을 통해 한말 남당학파(南塘學派)였던 유호근의 학문 수준과 남당학파의 교우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저자]
유호근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선직(善直), 호는 사가(四可)이다. 어려서는 과거 공부를 하고 만년에 학문에 공을 들여 경술(經術)과 문장에 뛰어났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시행되자 이듬해인 1896년(고종 33) 2월 유인석(柳麟錫)[1842~1915]의 의병에 지원하였고, 1905년(고종 42)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이듬해인 1906년(고종 43) 5월 민종식(閔宗植)[1861~1917]의 의병에 합류하여 홍주성전투에 참가하는 등 항일 투쟁을 활발하게 펼쳤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영남 유림 137명의 독립탄원서를 작성하였다. 이후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에 연루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묘소는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내현리에 있다가 2002년 내항동 선영(先塋)으로 이장하였고, 2003년 보령시와 국가보훈처의 지원으로 묘비(墓碑)를 건립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사가집』은 유호근의 제자인 김노동의 주선으로 정찬호(鄭粲好)·이홍직(李洪稙) 등 동문들의 도움을 받아 1958년 신연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형태/서지]
『사가집』은 신연활자본 6권 3책으로, 광곽은 사주단변(四周單邊), 반곽의 크기는 세로 21.0㎝, 가로 14.3㎝이다. 행자 수는 12행 25자, 주(註)는 쌍행(雙行), 어미는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이며, 책 크기는 세로 28.5㎝, 가로 18.5㎝이다.
[구성/내용]
『사가집』의 서문은 1925년 저자 유호근이 썼으며, 발문은 1958년 제자인 김노동과 이응규(李應珪)가 썼다. 권 1에는 사(辭) 1편, 가(歌) 5편, 시(詩) 159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 2에는 상면암최공익현(上勉庵崔公益鉉) 등 서(書) 27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 3에는 서(序) 13편, 기(記) 5편, 제발(題跋) 12편, 명찬(銘贊) 12편, 혼서(婚書) 1편, 상량문(上樑文) 1편, 제문(祭文) 19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 4에는 애사(哀辭) 1편, 고축(告祝) 3편, 잡저(雜著) 19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 5에는 잡저 3편, 묘지명(墓誌銘) 2편, 유사(遺事)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잡저에 수록된 수특록(修慝錄)은 자신에 대한 회고와 겪은 사건을 기록, 서술하였다. 호려쇄기(壺旅瑣記)에는 춘추지법(春秋之法)과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1855~1907]를 비롯한 의로운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권 6에는 행장(行狀) 7편, 전(傳)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사가집』은 유호근의 뛰어난 문장과 유교적 학문의 수준을 보여주며, 저자와 관련된 인물들을 통해 한말 남당학파와 항일 위정척사 사상을 가진 인물들의 활동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