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5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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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巴里藏書運動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정의]
1919년 3월 충청남도 보령 지역 유림들이 국가와 민족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국내외에 표명하였던 역사적 사건.
[역사적 배경]
유림들은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하지만 고종(高宗)[1852~1919]이 시해되었다는 소식이 널리 퍼지고 전국 곳곳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남에 따라 호서 유림들도 전국적으로 유림들을 규합하고 프랑스 파리에 독립을 청원하는 장서운동[독립청원서]을 전개하였다.
신학문의 보급과 신분 의식의 약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는 의지는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강인한 성리학의 전통과 결부되어 3·1운동을 일으켰다. 충청남도 홍주 지역 유림의 상당수가 평민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민족자결주의의 세계사적 흐름에 동참하여 호서 지역 유림들이 파리장서에 다수 참여하였다.
[경과]
일본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도 영남 102명, 호서 17명, 호남 9명, 미상 9명 등 총 137여 명의 유림들이 서명하였다. 파리장서는 김창숙(金昌淑)[1879~1962]이 중국 상해로 가지고 가서 신한청년당 대표로 파리에 가 있던 김규식(金奎植)[1881~1950]에게 전달되었으며 국내 각 향교에도 우송되었다.
보령 지역에서는 유호근(柳浩根)[1853~1925], 유준근(柳濬根)[1860~1920], 백관형(白觀亨)[1861~1928], 김지정(金智貞)[1889~1948], 신직선(申稷善)[1853~?], 김병식(金炳軾)[1848~?] 등 6명이 서명에 참가하였다. 김병식은 72세, 유호근은 67세, 신직선은 66세, 유준근은 60세, 백관형은 59세로 고령에 속하며, 33세로 참여한 김지정은 백관형의 제자이다.
[결과]
파리장서운동에 참가한 보령 출신 서명자의 수는 호서 지역 서명자의 3분의 1에 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