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2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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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宗敎 |
영어의미역 | Religion |
분야 | 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범홍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이루어지는 신 또는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힘이나 원리를 신앙하는 행위의 총칭.
[개설]
창원시는 2010년 7월 1일자로 구 마산시 및 진해시와 행정 구역을 통합하여 통합 창원시로 공식 출범하였다. 이에 따라 창원시의 인구는 통합 전 60여만 명에서 통합 후 약 110여만 명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통합의 내용이란 단순히 행정적 통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구를 비롯한 전반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통합 창원시는 통합 전 마산시와 진해시의 모든 내용을 포함하게 된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양적으로나 수적으로 엄청난 증가가 이루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 부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통합 후 2010년 10월 현재 창원시청 문화 관광과에 등록되어 있는 종교 단체는 총 832곳이다. 통합되기 전 창원시 지역의 등록 자료에 의하면, 종교 단체는 총 279곳이었으나 통합 후에는 무려 두 배 이상 늘어나서 553곳이 증가되었다. 통합 전 종교 단체의 등록 현황을 살펴보면, 불교 76개소, 유교 1개소, 천주교 9개소, 개신교 172개소, 통일교 7개소, 원불교 4개소, 대순진리교 2개소, 여호와의 증인 3개소, 국제 도덕 협회, 증산도, 한국 불교 일련정종, 천리교 등은 각 1개소로 총 279개소로 확인된다.
통합 후 창원시의 종교 단체와 그 교세는 엄청나게 증가하였다. 특히 불교, 천주교, 개신교의 종교 단체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는데, 통합 전·후를 비교해보면 불교 단체는 76개소에서 234개소로, 천주교 단체는 9개소에서 무려 45개소로 증가하였다. 천주교의 단체 수가 급증한 이유는 통합 창원시의 통계상 천주교 단체의 통계가 창원지구 1지역, 창원지구 2지역, 창원지구 3지역과 마산지구 1지역, 마산지구 2지역, 마산지구 3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데 있다. 즉 창원지구 2지역에는 인근인 경상남도 김해시와 밀양시의 천주교 단체를 포함하고 있고, 마산지구 3지역에는 인근인 경상남도 의령군·창녕군·함안군까지 통계 속에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개신교의 단체 수는 172개소에서 528개소로 무려 3배 이상 급증하였다. 이와 같은 통계를 통해서 창원시 개신교의 두드러진 전도 활동을 짐작할 수 있다.
2013년 5월 현재 통합 창원시의 문화 관광과에 등록되어 있는 종교 단체는 총 832개소로, 불교, 천주교, 개신교뿐만 아니라 유교, 통일교, 원불교, 대순진리교, 여호와의 증인, 국제 도덕 협회, 증산도, 한국 불교 일련정종, 천리교 등을 포함한다. 그러나 창원이 통합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등록되지 않았거나 혹은 규모가 작은 사찰과 교회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흥 종교로는 외국에서 유입된 여호와의 증인이나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모르몬교], 천리교 등이 있고, 기성 종교에서 파생된 원불교와 통일교, 천부교[신앙촌] 등이 있다. 그리고 자생적인 민족 종교로는 단군교 계통인 대종교, 증산교 계통인 대순진리교, 동학에 근원을 두고 있는 천도교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창원시의 지역적 특수성을 감안할 때 바닷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민간 신앙의 형태로 보존되는 종교 단체도 상당수 존재할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민간 신앙은 대부분의 경우 특정한 종파나 교파에 소속되지 않고 개인적인 종교 단체로 운영되고 있는 형편이지만, 그 중에는 무속인들의 연합 단체인 대한 경신 연합회(大韓敬信聯合會)에 등록되어 있는 곳도 있다. 이러한 무속 종교의 현상은 현대 사회에서 전통적 종교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그 공백이나 정신적 방황을 부분적으로 메워주는 역할을 담당하여 정신적 의지처가 되고 있으며, 특히 기층민의 신앙 활동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속 행위로 활발하게 종교 활동을 하고 있지만, 국가는 아직까지 무교(巫敎)를 종교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가의 공식적인 종교 센서스에 무속 종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는 불교, 유교, 천주교, 개신교를 비롯한 기성 종교 외에도 여러 가지 신흥 종교와 민간 신앙들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종교 단체의 현상을 보이면서 시민 각자에 맞는 자유로운 신앙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창원시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종교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불교]
창원 지역에 언제부터 불교가 유입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창원시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에 전해오는 전설이나 명칭을 통해서 일찍부터 불교가 이곳에 들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도 절골, 탑골, 부처골, 부처 고개, 불모산(佛母山) 등 불교와 관련된 이름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또한 남방 불교 전래설의 연원이 되는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과 허 황후에 얽힌 설화 역시 창원 지역의 불교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학계의 공식적인 견해가 아니므로 다만 그렇다고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창원 지역의 불교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南白月二聖努肹夫得怛怛朴朴)’조에 나오는 창원 ‘백월산 남사(白月山 南寺)’에 대한 설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미 남사는 사라지고 없으나, 지금도 백월산 주변에는 석불 좌상과 불두, 3층 석탑과 상륜부 등의 석물들과 당시의 기와 조각이 출토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탑재와 석등의 부재들도 흩어져 있어 기록의 내용이 단지 설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임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근래에는 ‘남사’란 명문이 들어간 와당이 발견되어 한층 더 『삼국유사』의 내용이 분명한 사실임을 알게 해준다. 와당은 현재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따라서 이곳이 문헌에 나타난 창원 지역 최초의 불교 유적지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또한 같은 곳에는 회진암(懷眞庵)이나 유리광사(瑠璃光寺) 같은 여러 사찰의 이름도 보여 현재 창원시 북면 소재의 백월산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사찰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과 더불어 창원 지역의 불교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사실은, 나말 여초에 형성되었다고 알려진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인 봉림산(鳳林山) 봉림사(鳳林寺)의 개산(開山)을 들 수 있다. 현재 창원시 봉림산 기슭에 폐사지로 남아 있는 봉림사지를 통해서 창원 불교에 대한 또 하나의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봉림산문의 개산이 창원 불교 이해의 명백한 출발점이라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봉림산문은 개산조로 추증된 원감 국사(圓監國師) 현욱(玄昱)과 그의 뒤를 이은 진경 대사(眞鏡大師) 심희(審希)에 의해 크게 세력을 떨쳤다. 특히 심희가 입적하자 왕은 ‘진경’이란 시호(諡號)와 ‘보월능공(寶月凌空)’이라는 탑명(塔名)을 내렸다. 현존하는 ‘봉림사 진경 대사 보월능공탑(鳳林寺眞鏡大師寶月凌空塔)’과 탑비’(塔碑)를 통해서 창원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찬란한 역사적 불교를 엿볼 수 있다. 현재 봉림사지에는 폐사지의 허허로움과 함께 탑과 탑비가 위치하고 있던 자리에 1919년 3월 조선 총독부에서 이건했음을 알리는 ‘봉림사 진경 대사 보월능공탑비지(鳳林寺眞鏡大師寶月凌空塔碑址)’라는 표지석이 있을 뿐이다. 현재 ‘탑’과 ‘탑비’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 중앙 박물관에 소재하고 있으며, 1963년 1월 21일 각각 보물 제362호와 제363호로 지정되었다.
한편 현재 창원시에 등록된 불교 단체의 현황을 살펴보면 대한 불교 조계종·한국 불교 태고종·대한 불교 천태종·대한 불교 법화종·대한 불교 연화종·대한 불교 일승종·대한 불교 관음종·대한 불교 원효종·대한 불교 태성종 등 26개 불교 종단에 234개소의 사찰이 있다. 한국 불교의 가장 큰 종단인 조계종은 사찰 수에서나 신도 수로 보아 교세가 월등하지만, 군소의 작은 종단은 교세가 미약한 형편이다.
현재 창원시에는 8곳의 전통 사찰이 지정되어 있다. 구 창원시 지역의 성주사·불곡사·우곡사 등 3곳, 구 마산시 지역의 의림사·광산사·성덕암·정법사 등 4곳, 구 진해시 지역은 성흥사 1곳이다.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찰은 근래에 건립되었다. 전통 사찰을 제외하고 최근에 크게 성장하여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찰을 든다면, 창원의 불지사·길상사·구룡사·원흥사, 마산의 정인사·삼학사, 진해의 대광사·정암사·해장사 등 10여 곳이 있다.
[유교]
현재 창원시의 유교를 창원 지역으로만 국한하여 살핀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창원, 마산, 진해를 포함하여 함안, 칠원 등 인근 지역과 동시대의 역사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통합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자료나 문헌 등으로 기록된 내용이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으므로 본격적인 창원 지역의 유교는 지방의 관학 교육 기관인 향교와 민간 중심의 서원을 통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창원시 소답동에 있는 창원 향교는 1276년(충렬왕 2)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확실한 근거가 없고 조선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마산시 합성동으로 이건되었으나 지세가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겨 왔다고 전하지만 이 역시 확실하지 않다. 창원 향교 경내에는 대성전과 동·서무, 명륜당, 동·서재, 그리고 풍화루(風化樓) 등이 남아 있다. 특히 창원 향교 대성전은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135호로 지정되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오성위(五聖位)와 공문십철(孔門十哲), 송조 육현(宋朝六賢)을, 동·서무는 조선의 18현을 모시고 매년 춘추로 석전제(釋奠祭)를 행한다. 현재 창원 향교 옆에 있는 지하 1층, 지상 3층의 현대식 유림 회관은 1989년에 건립되었으며, 성균관 유도회 경상남도 본부 창원시 지부가 설치되어 있다.
한편 마산 향교는 현재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교동리에 소재하고 있다. 마산 향교는 1414년(태종 14)에 진해현과 함께 설치되어 진해 향교로서 현 위치에 창건 됐으나 그 후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실된 것을 1752~1776년에 재건하였다. 현재의 건물 또한 1920년에 철거됐던 것을 1990년 11월에 복원한 것이다. 그 후 1993년 창원군 향교로 재건됐다가 1995년 1월 1일자로 시군 통합으로 마산 향교로 불리게 되었다. 경내에는 정문인 풍화루, 강학 공간인 명륜당, 성현들의 신위를 모신 대성전 등이 있다. 건물의 배치는 풍화루, 명륜당, 대성전이 일직선이 되는 구조로, 각 건물은 대성전을 향하여 지층이 한 단계씩 올라가도록 조성하였다. 마산 향교의 건물들은 여러 차례 중수와 재건을 거듭하였는데, 대성전의 축대와 정문 풍화루, 그리고 문밖에 세워져 있는 ‘신위 매안지비(神位埋安之碑)’와 ‘하마비(下馬碑)’가 향교의 전통을 짐작케 할 뿐이다.
진해 지역은 1392년(태조 1) 전국의 부·목·군·현에 각 1개소씩 향교를 설치할 때 웅천의 향교도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현북 1리에 있던 것을 영조 대에 현서 1리[현 북부리 산569-1]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춘추로 지역 유림들에 의해 제향이 봉행되다가 1941년 창원군이 마산부에서 독립 분리됨에 따라 일제가 향교를 1군에 1개소만 존치시키는 방침에 따라 웅천 향교는 폐지되었다. 1882년 웅천 향교로 옮겨 사용하던 창원 객사의 삼문은 1943년 우담 화상이 지금의 창원시 비음산 불곡사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해방 후 중앙에서 조직된 대한 유도회의 지부가 이곳에도 생겨나 동부 지회와 서부 지회로 구성되었다. 이를 통해 유교의 정신을 구현하고 국가의 번영과 민족 문화 창달에 노력하고 있다.
한편 창원 지역에 설립되었던 서원으로는 의창구 동읍 석산리의 도봉 서원(道峰書院)과 화양리의 도남 서원(道南書院), 의창구 사화동의 운암 서원(雲巖書院)이 있다. 또한 마산회원구의 회원 서원(檜原書院)과 구암동의 구암 서원(龜岩書院) 그리고 내서읍의 여산 서원(廬山書院), 첨두 서원(瞻斗書院) 등이 있다.
[천주교]
현재 창원시의 천주교회는 1966년 3월 부산 교구에서 마산 교구가 분리됨에 따라 천주교 마산 교구 소속으로 되어 있다. 설립 당시는 남성동 성당을 비롯해 마산, 진주, 진해 중서부 지역에 소재한 21개 본당과 22명의 성직자와 2만 8000여 명의 신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1966년 5월 31일 초대 교구장[1966년 2월~1968년 4월]에는 김수환 스테파노가 주한 교황 공사의 집전으로 주교로 서품되어 착좌식을 가짐으로 마산 교구가 탄생되었다. 초대 김수환 주교는 1968년 4월 서울 교구장인 대주교로 전출하였다가 1969년 4월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승격되었다. 그 후 2대 교구장[1968년 10월~1989년 2월]으로 부산 교구 부교구장이었던 장병화 요셉 신부가 주교로 서품되면서 착좌식을 가졌다. 특히 그는 1971년 3월 양덕동에 가톨릭 여성 회관을 개관하고, 1974년 6월에는 오동동에 가톨릭 문화원을 개원하여 마산 교구청을 가톨릭 문화원 내로 이전하였다. 또한 1979년 4월에는 주교좌 본당을 남성동 본당에서 양덕동 본당으로 변경하고 1985년 9월에는 가톨릭 사회 교육 회관을 건립하였다. 3대 교구장[1989년 2월~2002년 11월]으로 박정일 미카엘 주교가 마산 교구를 이끌었으며, 현재는 안명옥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가 4대 교구장[2002년 11월~현재]으로 활동하고 있다.
천주교 마산 교구청의 본당과 단체는 마산 지구, 창원 지구, 진주 지구, 거제 지구와 단체로 분류하고 있다. 마산 지구는 19개소, 창원 지구는 21개소의 본당을 가지고 있으며, 진해 지역은 창원 지구 제3지역 속에 경화, 덕산, 여좌, 용원, 중앙 등 5개소를 포함시켜서 관리하고 있다. 현재 마산 교구 전체는 준본당 2곳을 포함하여 본당 74곳, 공소 52곳, 신부 152명[교구장 포함], 수녀 319명, 신자가 남자 6만 6728명, 여자 9만 6917명 등 총 16만 3645명인 거대한 교구로 발전하였다. 이것은, 조선 교구 시절에 완월[1900], 문산[1905]의 본당, 대구 교구 시절에 함양[1913], 옥봉·옥포[1926], 태평[1929], 합천[1932], 함안[1933], 거제·진영[1935], 장재[1938], 고성[1951], 장승포[1953]의 본당, 부산 교구 때 삼천포[1957], 남해[1961], 사천[1962], 월남[1964], 칠암·경화·산청·하동[1965], 의령[1966] 본당이 설립되었다
그리고 마산 교구 출발 후에는 상남[1966], 대산[1967], 남지·여좌·칠원[1979], 산호[1980], 반송·양곡·회원[1981], 대건[1985], 하대[1986], 구암[1986], 사파[1989], 진교[1990], 석전·명서·호계·신안[1991], 지세포·덕산[1992], 북신·장평[1993] 본당 등이 설립되고, 수산[1996], 월영[1998], 진례[1998 준본당-2009 본당 승격], 용잠[1998 준본당-1999 본당 승격], 망경동[1998], 대방동[2000], 삼계[2004], 신월동·창원 상남동·토월[2005], 팔룡동[2007], 서포 선교·용원[2007], 금산·안의 선교[2008], 생림 선교[2009], 가좌동[2010] 등이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마산 교구청의 단체로는 교육 기관 4개소, 의료 기관 1개소, 사회 복지 기관 76개소, 출판 보도 기관 2개소와 기타 단체로 68곳이 있다. 기타 단체 속에는 가톨릭 농민회를 비롯하여 가톨릭 교수회, 가톨릭 봉사단, 가톨릭 법조인회, 가톨릭 여성회 등 각 직업이나 직능별로 단체를 조직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개신교]
현재 창원시 개신교 종교 단체의 총수는 528개소이다. 2010년 7월 창원시는 마산시, 진해시와 함께 행정 통합을 이루었다. 통합 창원시가 되기 전 창원시 문화 관광과에 등록되어 있던 교회의 총수는 모두 172개소였다. 특히 이 숫자는 창원시가 통합되기 전인 1995년 1월 1일 행정 구역을 개편하여 인근의 동읍, 북면, 대산면을 창원시에 편입시킴으로 다른 종교 단체에 비해 월등하게 늘어난 개신교의 총 교회 수이다. 이 수치는 창원시 종교 단체 총수인 279개소 중에서 거의 2/3에 달하는 172개소가 개신교의 교회였다. 여기에 다시 통합 창원시가 되어 마산시, 진해시의 모든 교회를 포함하자 총수는 무려 528개소로 늘어났다. 즉 172개소에서 528개소로 급증한 것이다. 그러나 이 수치는 통합 당시 그때까지 각 시의 문화 관광과에 등록된 종교 단체의 단순한 숫자의 합계에 불과한 것이므로, 천막 교회나 개척 교회를 포함하여 등록되지 않은 교회까지 감안한다면 교회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창원시의 개신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종교 단체의 규모가 가장 크다. 그러므로 지역을 각각 나누어서 서술하겠다,
1. 구 창원시 지역
구 창원시 지역 최초의 개신교 교회는 1895년 6월 박치우·유사림이 복음을 받아 박치우의 가정인 창원군 창원면 북동리 123번지에서 예배를 보면서 설립된 북동 교회[현 창원 교회]이다. 또한 1906년 4월 창원군 상남면 가음정리 권재학의 가정에서 예배를 보면서 가음정 교회도 설립되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소속인 두 교회는 한국 개신교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중반 창원 지역에 기계 공업 단지가 조성되고 이와 더불어 1980년대 초반 경상남도청이 창원시로 이전하게 되면서 교회의 수와 교세는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창원시에 등록된 종교 단체 중 가장 많은 단체가 개신교 단체이며 개신교 내 종파별로는 한국 교회의 전체적인 교세를 반영하듯이 장로교회가 월등하게 많다. 그 외 감리 교회, 성결 교회, 침례교회는 비슷한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하느님의 성회, 순복음 교회, 구세군 등이 뒤를 잇고 있다.
또한 통일교와 여호와의 증인도 각각 7개소와 3개소가 있다. 특히 통일교는 통일 교단에서 소유한 기업과 공장들이 창원 기계 공업 단지에 많다는 지역적 특수성에 힘입어 다른 지역보다 많은 교회와 신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2. 구 마산시 지역
구 마산시 지역의 개신교는 1901년 장로교 공의회 선교부 출신인 백도명(白道明)의 전도로 감화된 김마리아, 김인모(金仁慕) 등 여신도 7명이 모여 예배하면서 교회가 설립되었다. 그 후 김주은이 호주 선교사 손안로[A. Adamson]에게서 복음을 듣고 그 아들 이승규에게 전도하니 동지 수십 명이 입교하게 되었다. 손안로 선교사는 현 창동 시민극장 뒷골목 고 한영택 장로의 집을 사들여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다. 1903년에는 마산포 교회를 짓고 1906년에는 독서숙(讀書塾)을 설치하여 창신 학교(昌信學校) 설립의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1916년에는 다시 의신 여학교(義信女學校)를 분리하였다. 그 후 1919년 12월 마산합포구 추산동에 신축 예배당을 낙성하고 이에 맞춰 마산포 교회를 문창 교회로 개칭하여 새롭게 출발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교인들의 갈등과 대립이 증폭되자 1927년 11월 조선 예수교 장로회 소속 마산 문창 교회에서 탈퇴한 교인들은 자치 선언을 통해 독립 마산 예수교를 창설하였다. 독립 교회 창건을 위해 노력한 결과 1928년 11월에는 독자적으로 헌당식을 가졌다. 그 후 1949년 6월 북미 감리교 계통의 교파인 대한 감리회에 가입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한편 문창 교회는 1931년 7월 부산 초량 교회에서 부임해온 주기철 목사의 활약으로 크게 고무되었다. 특히 신사 참배 반대 운동으로 유명한 주기철 목사의 에큐메니컬[교회 연합] 운동으로 교회는 활력을 얻었고 신앙을 보수화하는데 철저하였다. 그러나 1940년 11월 부임한 김동선 목사 때부터 신앙 본연의 순수성을 지키지 못하다가 결국 일제의 압력에 굴하고 말았다. 교회는 1945년 8월 일본 기독교 산하 조선 교단으로 명칭을 바꾸는 것은 물론 목사의 창씨개명은 문창 교회의 역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성결교의 탄생은 1927년 12월 25일 성탄절 서울에서 파견된 전성현 목사의 자택에서 이루어졌다. 1929년 4월에는 새 성전을 건립하여 기독교 대한 성결 교회 오동동 교회로 명명하였다. 1948년 1월에는 제2 문창 교회를, 1951년 7월에는 제3 문창 교회를 설립하였다. 1952년 9월, 14대 김석찬 담임 목사가 취임하여 주기철 목사에 못지않은 정통 보수 신앙을 지켜온 동시에 교회 연합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72년 4월 원로 목사로 추대되기까지 20년을 열정적으로 목회 활동을 하는 한편 지역 사회 봉사에 헌신적으로 노력해왔다.
한편 불씨가 남았던 법통파와 고신파의 갈등은 화해보다는 대결로 나가더니 결국 법정으로 비화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와 함께 법통파[고신] 문창 교회 소속의 교인들은 1954년 의신 유치원의 예배를 계기로 고신파 동광 교회로 분리되었다.
그 후 현재까지 1세기의 역사를 지닌 문창 교회는 마산 지역 교회의 복음 전파를 위한 산실로 우뚝 서 있다.
교파별로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가 압도적으로 많은 교회를 확보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예수교 대한 성결 교회, 기독교 대한 감리회, 기독교 한국 침례회 등의 순으로 활동하고 있다.
3. 구 진해시 지역
구 진해시 지역 개신교가 최초로 전파된 지역은 웅천 지방이다. 1900년 현재 웅천 성내리에 거주하던 김원수가 김해읍 교회의 장로였던 배동식의 전도에 의해 자기 집에서 이웃사람들과 예배를 본 것이 시초이다. 1903년에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심익순(沈翊舜)[Walter E. Smith][1874~1932]이 파견되어 적극적으로 전도함에 따라 신도가 늘어나자 초가 예배당을 세웠다. 이후 점차 교세가 확장되고 신도 수가 늘게 되자 1918년 교회를 새로 지어 이전하였다. 1926년에 다시 남문 교회와 북부 교회로 분리되었다가 1928년 다시 통합되기도 하였다. 현재의 교회[웅천 1동 성내동 385]는 1931년 호주인 선교사 맹호은(孟皓恩)[F. Macrae][선교 기간 1910~1940]의 설계로 이듬해인 1932년에 준공된 것이다.
또한 이 지역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로 명동 교회[웅천 2동 명동]가 있다. 1911년 1월 주성찬의 사랑방에서 처음으로 예배를 시작한 후 1911년 3월 초가를 매입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다가 1975년 현대식 교회를 신축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1946년 대흥동에 진해 교회가 설립되어 경화 교회와 분리되고, 1952년에는 고신계 신도들이 또 분리하여 경화 중부 교회를 건립하였다. 특히 6·25 전쟁의 와중에도 진해는 군항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으로 인해 1950년 11월 해군 교회가 설립되어 전쟁의 어려움 속에서 정신적·육체적으로 방황하는 많은 병사들을 위무하는데 큰 역할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진해구의 개신 교회는 총 91개소인데, 여기에는 군인 교회와 구세군, 제7안식교의 교회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기타 종교]
기타 종교는 위에서 설명한 기성 종교 이외에 창원시에 종교 단체나 조직을 가지고 있으면서 창원시 문화 관광과에 등록되어 있는 종교 단체로 한정한다.
창원시가 통합되기 전인 2007년 8월 현재 창원시 문화 관광과에 등록되어 있는 기타 종교 단체 현황을 보면, 원불교 4개소, 대순진리회 2개소, 천리교 2개소, 증산도 1개소, 한국 불교 일련정종 1개소, 국제 도덕 협회 1개소 등이 있었다. 그 후 2010년 7월 통합 창원시가 출범한 이후 등록된 통계를 보면 이보다 훨씬 많은 종교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종교 단체들은 등록되어 있지 않는 실정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종교 단체를 가지고 있는 종교는 원불교이다. 창원시의 원불교는 원불교 경남 교구 산하의 김해 지구, 마산 지구, 진주 지구로 구분한 가운데 마산 지구에 소속되어 있다. 마산 지구 관할의 범위 속에 통합 창원시를 포함하고 있다. 교당을 살펴보면 총 10개소로, 마산·신마산·서마산·동마산·진동 교당과 창원·동창원·신창원 교당, 그리고 진해 교당과 용원 교당이다. 통합된 이후에 특기할만한 점은 천리교의 단체 수가 2개소에서 9개소로 늘었다는 점과 그 중 6개소가 진해에 소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천리교는 1838년 10월 창시된 일본의 신흥 종교이다. 일찍부터 유입되어 일제 강점기에는 크게 확산되었으나 해방 이후 일본의 종교란 이유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서 사회봉사 활동을 하며 사회적 신뢰를 쌓은 후 1975년 한국 종교인 협의회에 가입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1985년 대한 천리교에서는 일본의 민족 신앙에서 탈피하여 세계 종교가 되고자 했으나 예배 대상의 견해 차이로 경상남도와 부산 교구의 일부 교역자들이 교단에서 이탈하여 한국 천리교 연합회를 구성하였다.
그밖에 특별히 종교 단체의 숫자가 늘어난 경우는 보이지 않는다. 대순진리회, 증산도, 한국 불교 일련정종, 국제 도덕 협회 등에도 단체 수에 두드러진 변화는 없다. 다만 창원시가 통합되어 마산합포구에 소재하고 있던 민족 종교인 대종교 경남도 본사 1개소와 신앙촌으로 유명한 박태선 장로의 전도관이 이름을 바꾼 천부 교회가 마산의 서마산 교회와 마산 교회, 진해에 진해 교회 등 3개소로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통합 창원시는 해군 군항 도시인 진해시를 포함하게 되었으므로 해군을 위한 특수한 종교 단체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진해시에 소재한 해군들과 그 가족, 그리고 해군 사관학교 생도들의 종교 활동을 위해서 각각의 종교 단체는 일찍부터 특별한 조직을 구성하고 포교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6·25 전쟁을 겪으면서 군종 제도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 군종의 종교 활동의 목표는 장병들에게 신앙적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정신 전력을 강화하고 군인의 사생관(死生觀)과 국가관을 확립시켜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1957년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에 의해 시작된 군종의 역사에는 그 후 개신교, 천주교, 불교에 이어 현재 원불교도 포함되어 있다. 군종 장교는 개신교의 군목, 천주교의 군종 신부, 불교의 군종 법사, 원불교는 군종 교무라 부르며, 병은 모두 군종병으로 통칭하고 있다. 특히 군종 장교는 4년제 대학교나 대학원을 졸업하고 각 종교의 공인된 성직자여야만 하며, 각 종교마다 기준이 다르다. 군종병의 경우는 자신의 종교와 관련된 학과에서 1년 이상 공부한 자 또는 세례[불교는 수계]를 받은 지 3년 이상 되어야 한다.
진해 해군 사관학교 생도들의 종교 활동을 간단히 살펴보자. 사관생도는 자기가 믿는 종교에 따라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다만 대외적인 종교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소정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종교 집회에 참석하는 생도의 복장은 정복을 원칙으로 하나 전투복도 가능하다. 원칙적으로 생도는 교외의 종교 집회에는 적을 둘 수 없고 교내의 옥포 교회나 진해 해군 성당 또는 호국사에서 활동해야 한다. 생도들은 각자의 신앙에 따라 교내의 기독교, 천주교, 불교 시설에서 매주 수요일 저녁과 일요일 오전에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사관생도들에게는 1인 1종교를 선택하도록 권하며 1학년 생도들은 사생관 확립과 정신 전력 강화 차원에서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학년들의 종교 활동은 자율에 맡긴다. 또한 세례식, 영세식, 수계식은 4월과 9월로 해마다 두 차례 행해지며 각 종교별로는 교리 강좌도 실시하고 있다. 이는 모두 종교 교육을 통해서 교리 뿐 아니라 깊은 신앙심과 자율적 종교생활에서 우러나오는 애국 애족의 민주적 군인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휴가 기간 동안 신앙생활의 강화를 위해서 각 종교별로 마련되는 수련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한편 생도들은 각종 종교 행사를 원활히 하고 신앙의 향상을 위해서 생도 자치 교우회를 두고 있다. 여기서 매주 수요일 실시되는 종교 활동에 전원이 참석할 수 있도록 서로 권장하고 있다. 교우회의 임원은 4학년, 보조 임원은 3학년 중에서 임명하며, 기독교에서는 기독교 교우회, 가톨릭에서는 가톨릭 생도회, 불교에서는 법우회라 이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