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5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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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山運送爭議 |
이칭/별칭 | 구마산 운송 업계의 종업 인부 맹파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성철 |
[정의]
1927년에 경상남도 마산부 구마산의 운송업 노동자들이 일본인 고용주에게 일으킨 동맹 파업.
[역사적 배경]
1927년 3월 경성 철도국이 하나의 역에 하나의 사업체만 두겠다는 정책[일역 일점 주의(一驛 一店 主義)]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신마산, 구마산, 진영, 삼랑진역 등에서 운수업에 종사하던 한국인 업주[마산 선운 업주 조합]들은 이 정책이 자신들에게 파급될 악영향을 우려하여, 일본인과 한국인이 합동하여 운수업을 할 것인 지 말 것인지 등을 포함한 현안 문제들을 의논하기 위해 철도 당국을 방문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일본인 업자들은 한국인과의 합동 운수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합동 주식회사 창립 발기를 승낙한다는 동의서 날인을 업자들에게 이미 받고 있는 중이었다.
[경과]
1927년 3월 15일 한국인 운수업자들은 일본인과의 합동 운수 사업은 한국인에게 매우 불리할 뿐만 아니라 향후 한국인들의 운송 사업이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 판단하고, 만일 일역 일점 주의가 시행된다하더라도 한국인과 일본인을 구분하여 일역 이점 주의를 실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아가 한국인끼리만 합동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들도 거세게 일고 있었다. 이러던 와중 1927년 6월 2일, 경상남도 마산부 구마산에 있는 일본인 경영의 운송 회사에서 종사하던 한국인 노동자 27명은 동맹 파업을 하게 된다. 동맹 파업의 주된 이유는 임금 할당 방법의 변화 때문이었다. 즉 회사 측에서 4할 5부를 취하고 노동자 측에게는 3할만 주겠다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거세어지고 있었으나 회사 측에서는 노동자들을 불러 모아 별 다른 변화가 없는 고용 계약서를 보여주며 서명 날인하도록 하였다. 이에 구마산 운수 노동 조합에서 항의서를 발송하기도 하였으나 일본인을 대표한 흑진모(黑津某)는 일방적으로 경찰에 고발을 하거나, 계약서에 날인을 하지 않는 노동자들에게 일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에 억울한 감정을 느낀 노동자들은 동맹 파업을 감행하였다.
[결과]
일본인들은 종래의 4할 5부에서 3할 5부로 자신의 몫을 낮추었으나 한국인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1927년 6월 17일, 구마산 한국인 운송업자들은 한국인들만으로 자본금 10만 원을 마련하여 합동 운수 주식회사를 결성하게 된다. 이의 본점은 구마산에, 그리고 지점 및 출장소는 마산선 각 역에 배치할 예정이라고 발표하게 된다.
[의의와 평가]
마산 운송 쟁의는 일본인들의 독점과 착취에 대한 노동 운동의 성격뿐만 아니라, 한국인 운송업자들의 저항이 함께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여타 운동과는 다른 특이성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