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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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丙寅迫害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내수 |
[정의]
1866년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발생한 천주교도 박해 사건.
[역사적 배경]
병인박해는 대원군에 의해 1866년부터 1871년까지 지속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천주교 박해 사건이다. 1866년 2월 23일 서울의 베르뇌 주교가 체포되면서 시작된 병인양요는 충청도 지역에서도 공주·청주·홍주·해미 지역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체포되었다. 그리고 1866년 10월에 접어들면서 천안 지역에서도 천주교 신자들이 체포되었다.
[경과]
1866년 10월 목천의 성거산 소학골 교우촌이 발각되어 관군이 들이닥쳤다. 그리고는 그해 11월 14일에 배문호·고요셉, 16일에 최천여·최종여 형제, 최천여의 며느리 등 5명이 체포되었다. 이들은 공주로 압송되었고 12월 14일 순교하였다. 목천의 흑성산 자락에 있는 장자동에서도 신자들이 체포되었다. 공주에서 순교한 서완순과 청주에서 순교한 서완순의 아들 서상욱 등 2명이었다. 1866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신자들이 체포되었다. 소학골과 인근 지역에서 체포되어 순교한 신자는 총 8명이다.
천안 지역에서 병인박해로 순교한 신자를 보면 소학골 거주자 8명, 장자동 거주자 2명, 복구정 거주자 2명, 베장골 거주자 2명, 공심리 거주자 1명이다. 한편, 서들골·소학골·장자동 등지에서 거주하다가 타지로 피신하였다가 체포되어 순교한 신자도 8명에 달한다.
[의의와 평가]
현재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에 있는 천주교 성거산 성지에는 1866년 병인박해 때의 순교자를 비롯하여 무명 순교자 및 신앙 선조들의 유해 74기가 제1 단지와 제2 단지로 나뉘어 묻혀 있다. 이 성지의 모체는 이곳에서 남방 700m 지점에 있던 소학골 교우촌으로, 이곳은 여러 성직자들이 은신하여 사목했던 뜻 깊은 유적지이다. 현재의 천안시 동남구 북면 납안리 부근으로, 2008년에 충청남도 기념물 제175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