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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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大容先生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 462-2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엽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731년 - 홍대용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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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783년 10월 23일 - 홍대용 사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57년 - 홍대용 선생 묘비 건립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6년 2월 27일 - 홍대용선생묘 충청남도 기념물 제101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홍대용선생묘 충청남도 기념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홍대용선생묘 -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 462-22 |
성격 | 묘 |
관련 인물 | 홍대용 |
소유자 | 홍승주 외 5인 |
관리자 | 홍승주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기념물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담헌 홍대용의 묘.
[개설]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는 조선 후기 북학파의 대표적인 학자로 손꼽히는 담헌 홍대용(洪大容)[1731~1783]의 고향이다. 1783년 10월 23일 53세 되던 해에 세상을 뜨자 장례를 마친 후 12월에 현 위치에 묘를 조성하였다. 부인 한산 이씨와 함께 조성된 묘이다.
홍대용의 고향 마을 언덕에서 장사를 지내는데, 홍대용의 죽음을 슬퍼하였던 연암 박지원은 홍대용과 친분이 있던 중국의 손유의에게 부고를 전하며 ‘…… 덕보가 금년 10월 23일 유시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소에 별 탈이 없었는데 갑자기 중풍으로 말을 못하다가, 얼마 뒤에 곧 이런 지경에 이르고 말았으니, 향년 53세입니다. …… 부디 바라옵건대, 이를 대신하시어 오중(吳中)에 부고하여, 천하의 아는 이에게 그의 죽은 날을 알게 하여 죽은 이와 산 사람 사이에 한이 없게 하소서.’라고 알렸다고 한다. 또한 연암이 쓴 ‘홍덕보 묘지명’에는 ‘부인은 한산 이씨 홍중의 딸이고, 1남 3녀를 두었다. 사위는 조우철, 민치겸, 유춘주이다. 그해 12월 8일에 청주 어느 좌향 언덕에 안장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장산리는 조선 시대 목천과 청주의 경계로 행정 구역이 청주에 속하기도 하였던 곳이다.
[위치]
홍대용선생묘는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에 있다. 수신면 소재지에서 수신로를 따라 북쪽 병천 방향으로 3㎞ 떨어진 곳에 홍대용선생묘 입구가 있다. 이곳에서 100m 올라가면 묘역이 위치한다.
[변천]
홍대용선생묘를 조성한 후 70여 년이 지난 1857년에 묘비를 세웠다.
[형태]
묘역으로 오르는 계단이 조성되어 있고 묘는 부인 한산 이씨와의 합분(合墳)으로 봉분 앞에 상석이 있다. 좌우에는 망주석이 있고 정면을 봤을 때 우측에 묘비가 있다. 묘비는 비좌(碑座)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옥개석[지붕처럼 덮는 돌]을 올린 형태이다.
[금석문]
묘비의 전면에는 ‘담헌 홍 공 대용지묘 숙인 한산 이씨 부좌(湛軒洪公大容之墓 淑人韓山李氏祔左)’, 왼쪽 뒷면에는 김흥근(金興根)이 찬(撰)한 비문이 새겨져 있다.
[현황]
후손들이 해마다 시제를 올리며 묘역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입구에는 석재로 제작된 안내판이 있고, 봉분 주변은 조경이 되어 있다. 천안시에서는 2012년 애국 관련 시설을 연계하는 호국 충절 관광 벨트화 사업을 구상하며 ‘횃불 도보길’과 ‘조병옥 길’에 홍대용선생묘를 방문 코스로 하였고, 더불어 홍대용 선생 생가 및 담헌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996년 2월 27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0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홍대용선생묘는 북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담헌 홍대용의 유적이다. 인물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천안을 상징하는 인물 유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