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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협인석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711
한자 寶篋印石塔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대평리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박재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2년 12월 7일연표보기 - 보협인석탑 국보 209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보협인석탑 국보 재지정
현 소재지 동국 대학교 박물관 - 서울 중구 필동 3가 26
원소재지 보협인석탑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대평리
출토 유물 소장처 동국 대학교 박물관 - 서울 중구 필동 3가 26
성격 석탑|보협인 탑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둘레, 길이) 187㎝[전체 높이]|55㎝×66㎝[기단부]
소유자 국가
문화재 지정 번호 국보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대평리 탑골사지에서 발견된 고려 시대 석탑.

[개설]

보협인석탑(寶篋印石塔)은 일반형 석탑과는 형태를 완전히 달리하는 유례가 없는 특수형의 석탑이다. 원래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대평리 절터에서 수습된 것으로, 1967년 이곳에서 불법으로 반출되려는 석탑재(石塔材)를 입수하여 그 주변에서 수습된 석재와 함께 모아 놓은 것이었다.

‘보협인 탑’이란 『보협인 다라니경』을 그 안에 안치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중국 오월(吳越)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오월국의 마지막 왕인 충의왕 전홍숙(錢弘淑)은 인도의 아소카왕이 부처의 진신 사리를 8만 4000기의 탑에 나누어 봉안하였다는 고사를 본떠 금속 재료로 작은 탑 8만 4000기를 만들고 그 속에 일일이 『보협인다라니경』을 안치하였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탑을 ‘보협인 탑’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대평리 절터에서 발견된 보협인석탑이 유일하다. 1982년 12월 7일 국보 제20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보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천안시 동남구 북면 대평리 탑골 계곡에 있던 것을 동국 대학교 박물관으로 이전 복원하였다.

[형태]

복원된 탑의 현재 모습은 5개의 돌만 남아 있고 기단과 탑신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고 완전한 형태를 짐작하기 어렵다. 기단부는 현재 2개의 네모난 부재를 포개 놓았다. 그 위로 귀를 세운 머리 장식을 얹어 놓은 모습이다. 맨 아래의 탑신에는 굵은 테를 두르고 각 면에는 똑같은 모습의 불 좌상을 2구씩 조각하였다. 그 위에 큰 복련(伏蓮)을 돌아가며 새긴 받침대를 얹었다.

2층 탑신의 4면에도 테두리를 돌렸으며 4면에 부처님의 전생 설화가 새겨져 있다. 보협인석탑의 몸돌 윗면 중앙에는 『보협인 다라니경』을 안치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둥근 사리 구멍이 남아 있다. 위에는 당초무늬를, 아래에는 앙련(仰蓮)을 장식하였다. 말 귀 모양의 맨 윗돌에는 그 안에 석가의 일대기가 상하로 나뉘어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보협인석탑은 비록 완형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것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조성 연대는 오월과의 관계로 미루어 보아 고려 시대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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