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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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採準 |
이칭/별칭 | 김채준(金采俊),김채환(金埰煥)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900년 8월 22일 - 김채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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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0일 - 김채준 입장 장터 만세 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37년 7월 7일 - 김채준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김채준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김채준 출생지 - 충남 천안군 입장면 양대리 107번지 |
활동지 | 입장 장터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양대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3·1 운동 |
[정의]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채준은 1900년 8월 22일 충청남도 천안군 입장면 양대리 107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당시 직산 금광 광부로서 입장 시장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20일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에 위치한 양대리 입장 시장에서는 오전 10시경 안시봉과 강기형의 주도로 독립 만세 운동이 진행되었다. 안시봉은 직산 금광 광부였고, 강기형은 사립 광명 고등학교 교사였다. 강기형과 안시봉은 3월 10일과 3월 17일경 두 차례에 걸쳐 20일에 전개할 독립 만세 운동을 사전에 모의하였다. 당시 직산 금광회사에 재직 중이었던 김채준은 두 사람의 계획에 동의하여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3월 20일 안시봉과 강기형은 학생 수십 명과 더불어 직산 금광의 광부와 인근 주민 약 70여 명을 인솔하고 양대리 시장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시장을 누비며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 시위 행렬은 양대리 시장에서 3㎞ 떨어진 하장리(下場里)의 입장 시장을 향해 행진하였다. 양대리 시장에서는 70여 명이었으나, 입장 시장에서는 600~700명으로 행렬이 늘어났다. 결국 김채준은 시위 중 일제에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언도받았고,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