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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옥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913
한자 閔玉錦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5년 9월 5일연표보기 - 민옥금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20일 - 민옥금 입장 장터 만세 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88년 12월 25일연표보기 - 민옥금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민옥금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민옥금 출생지 - 충남 천안군 입장면 양대리 지도보기
활동지 입장 장터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양대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3·1 운동

[정의]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민옥금(閔玉錦)[1905~1988]은 1905년 9월 5일 충청남도 천안군 입장면 양대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사립 광명학교 학생으로서 입장 장터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20일 충청남도 천안군 입장면에 위치한 양대리 입장 장터에서 오전 10시부터 안시봉강기형의 주도로 독립 만세 운동이 계획되었다. 안시봉직산 금광 광부였고, 강기형광명학교 교사였다. 두 사람은 거사 전 두차례에 걸쳐 광명학교에서 만나 일을 계획하였다. 민옥금은 이에 동의하여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3월 20일 오전 10시경 민옥금을 포함한 광명 학교 학생 수십 명과 직산 금광 광부 그리고 인근 주민 약 70여 명이 양대리 장터에 도착하였다. 안시봉이 제작한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다. 이들은 모두 태극기를 흔들면서 시장을 누비며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 이 행렬은 양대리 장터에서 3㎞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하장리(下場里)입장 장터로 향하면서 만세 행진을 계속 진행하였다. 만세 운동 대열은 입장 장터에서는 600~700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는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면서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민옥금은 이 운동으로 일제에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았고, 10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1988년 12월 2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 제3권(독립운동사 편찬 위원회, 1971)
  • 「민옥금 판결문」(공주 지방 법원, 1919. 4. 28.)
  •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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