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999 |
---|---|
한자 | 聖城洞寧城山神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성동 영성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남향 |
의례 장소 | 산제나무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성동 영성 마을 노태산 |
---|---|
성격 | 민간 의례|산신제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시월상달 |
신당/신체 | 산제나무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성동에서 마을의 무탈함과 태평함을 위하여 지내는 산신제.
[개설]
천안의 서북구 성성동은 서북구 업성동 업성 저수지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1914년에 사라리·영성리·성인리·율동 등 네 개 마을을 합하여 천안군 영성면 성성리가 되었다. 1953년까지는 환성면에 속하였다가 1963년에 행정 구역 개편으로 천안시에 편입되면서 성성동으로 개칭하였다.
성성동 영성 마을에서는 음력 시월상달에 산신제를 모신다. 한 해 농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신 신령에 대한 감사의 뜻이 녹아 있다. 제사를 올리는 장소는 마을 서남쪽의 산 중턱에 있는 산제나무와 샘이다.
[연원 및 변천]
마을에서 언제부터 산신제를 지내게 되었는지 그 연원은 알 수 없다. 산신제를 정성껏 지내야 마을이 평안하다고 믿었다. 특히 제관을 맡으면 복을 받는다는 믿음이 있어서 아들 낳기를 소원하는 사람이 일부러 맡기도 하였다. 어떤 이는 딸만 여럿 있어서 아들을 얻는 게 소원이었는데 마을 어른들의 말을 듣고 제관을 맡았고 그해에 후사를 보았다고도 한다.
제사 장소인 노태산(魯泰山)은 평지에 우뚝 솟은 산으로 그 이름처럼 오랜 역사를 간직한 산이다. 중국 산둥 성에 있는 태산의 이름을 빌어서 노태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전설에는 산 정상에 공자(孔子)를 모신 사당(祠堂)이 있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노태산의 산신령이 호랑이로 둔갑을 하여, 산신제를 지내려고 찾아오는 이들의 밤길을 밝혀 주었고 영성 마을은 산신의 이러한 가호 속에 오랜 세월 평안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제당은 노태산 중턱에 있다. 제사 장소에는 산제나무와 샘이 있다. 산제나무의 수종은 쥐똥나무이며 부근에 맑은 샘물이 솟는다. 물이 매우 차가워서 옻·두드러기 등 피부 질환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옻샘’으로 알려졌다. 본래 산제샘은 노태산 밑에 있었는데, 산의 주인이 부근에 젖소 목장을 만들면서 오염되는 바람에 지금의 옻샘에서 물을 길어 제물을 준비하게 되었다. 한편, 산제나무 밑에는 떡시루와 메를 지을 때 사용하는 작은 솥을 보관하였다.
[절차]
마을에서는 음력 9월 그믐께에 택일하여 제를 지낼 날을 정한다. 흔히 책력을 잘 보는 노인이 길일을 잡는데, 그 날짜는 대개 시월 초로 결정된다. 또한 정갈하고 운이 닿는 사람으로 제관을 선출한다. 책력을 보아서 길일인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이 닿아야 한다. 제관을 흔히 ‘주당’이라 하며, 축문을 읽는 축관과 제수를 옮겨 줄 심부름꾼까지 세 사람을 뽑는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사흘간 문밖출입을 삼가고 근신한다. 초상집이나 산가(産家)와 같이 부정한 장소에는 왕래를 금하고 집 밖에서 짐승이 죽은 것을 보아도 부정하여 산신제를 모실 수가 없다. 사흘 전부터는 매일 찬물로 목욕재계한다.
제관은 물론이고 주민들도 부정을 가린다. 산신제 당일에는 집집이 황토를 펴 놓고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았다. 마을로 찾아온 손님들도 산신제를 지내야만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또한 정성을 드리는 기간에는 새우젓과 같이 비린 음식은 먹지 않는다.
제사 비용은 집집이 나락을 나누어 내어 충당한다. 제물로는 돼지머리·백설기·삼색과실·통북어·메·메밀묵 등을 장만한다. 메는 올리지만 반찬에 해당하는 탕과 나물은 쓰지 않는다. 이때 백설기와 메·조라술 등을 만들 때에는 제관의 집에 햇벼 한 말을 갈무리해 두었다가 쓴다. 메밀묵도 직접 수확한 메밀을 빻아서 만들었다. 그 밖의 필요한 제수는 제관이 직접 장에 나가서 산다. 장에 가는 길에 부정한 것을 보지 않도록 반드시 삿갓을 쓰고 아는 사람과 마주쳐도 말을 섞지 않았다. 제물을 살 때에는 흥정을 하지 않고 제값을 준다.
산제 당일에는 산제당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샘을 품는다. 이 또한 제관이 해야 할 일이다. 청소가 끝나면 왕겨 한 가마니를 가져가서 새로 고인 물을 뜨고 그것으로 조라술을 빚는다. 날이 어두워지면 제관 일행은 제물을 지게에 싣고 산제당으로 향한다. 심부름꾼은 제의 장소에 화톳불을 놓고 제관은 샘물을 길어서 메를 일곱 번 씻는다. 무엇이든 일곱 번을 해야 좋다고 하여 일부러 이처럼 했다. 메가 다 되면 가지런히 짚을 깔고 제물을 차린다. 메는 가장 맛이 좋을 때에 솥째로 뚜껑을 열어서 올린다.
산신제는 유교식으로 분향(焚香)·초헌(軺軒)·독축(讀祝)·아헌(亞獻)·종헌(終獻) 순으로 진행한다. 술은 석 잔을 올리며 마지막으로 소지(燒紙)[부정을 없애고 소원을 빌려고 사르는 흰 종이]를 올린다. 제관은 마을의 무사태평을 비는 산신 소지[대동 소지]를 올리고 나서 집마다 그 집 호주의 이름을 외면서 소지를 올려 준다. 이렇게 소지를 올리고 나면 메밀묵을 떼어 사방에 뿌려서 잡신을 풀어먹인다. 이 메밀묵은 도깨비가 가장 좋아하는 제물이라 한다. 제관 일행은 제장에 제물을 떼어 놓고 음복한다.
[부대 행사]
제관 일행이 산신제를 지내는 동안 각 가정에서도 산신을 맞을 준비를 한다. 이를 ‘마짐시루’라 한다. 제관이 산에 올라가자마자 마을을 향하여 “마짐시루 올리시오!”라고 크게 외치면 제관의 목소리가 신호가 되어 집집이 당산[장독대]에 올릴 마짐시루와 마루에 올릴 주인시루[성주시루]를 앉힌다. 산신의 가호를 적극적으로 집 안으로 이끌려는 마음이 담긴 풍습이라 할 수 있다.
[현황]
성성동 영성 산신제는 199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천안시의 급속한 팽창으로 마을 인근 지역이 공단으로 변하였지만 주민들은 주변 상황에 관계없이 산신제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