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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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雙龍洞-龍王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남향 |
의례 장소 | 쪽샘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 방축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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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동제 |
의례 시기/일시 | 정월 초[첫 진일(辰日)] |
신당/신체 | 샘|느티나무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에서 농사의 풍년과 마을의 무사태평을 위하여 지내던 마을 제사.
[개설]
오늘날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은 아파트 밀집 지역으로 변하여 옛 모습을 확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곳의 방축골은 지금의 천안 쌍용 초등학교와 천안 쌍용 중학교 부근에 있던 마을로, 봉서산 남쪽 기슭 부근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200여 호가 거주하는 큰 마을이었으나 개발이 되면서 원주민들이 이주하고 더는 옛 풍광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변하였다.
‘방축골’이라는 지명처럼 1990년대 중반까지 안동네에 저수지가 있었는데, 마을 이름을 붙여서 쌍용 저수지라 불렀다. 이 저수지 부근의 논 가운데에 샘이 있었고 정초에 택일을 하여 용왕제를 지냈다.
[연원 및 변천]
방축골 마을에서는 무사태평을 기원하며 용왕제를 지냈다. 엄밀히 보면 제사 장소는 세 곳으로 나뉜다. 순서상 제일 먼저 찾는 곳은 마을 뒷산의 느티나무와 샘으로, 이곳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그다음으로 마을 가운데의 느티나무로 향하는데 이를 ‘거리제’라 하였다. 마지막으로 저수지 부근의 샘에서 용왕제를 지냈다.
이렇듯 산신과 용왕, 거리의 신령 등 여러 신을 위한 동제(洞祭)이지만 주민들의 기억 속에는 특별히 용왕제가 각인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모든 제사를 통칭하는 것으로 용왕제를 쓰기도 하였다. 엄밀하게 산신과 용왕, 거리신은 서로 격이 다른 신령들이다. 용왕이 부각된 이유는 주민들의 풍농에 대한 염원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용왕은 수신(水神)이나 사자(使者)로 여겨졌다.
[신당/신체의 형태]
용왕제를 지내 온 샘은 논 가운데에 있었다. 물 색깔이 맑아 파란 하늘이 비치면 쪽빛을 띠어서 ‘쪽샘[藍井]’이라 불렀다. 샘가는 시멘트로 네모반듯하게 정비해 두었다.
마을 가운데에는 보호수[시나무 8-2-9호]로 지정이 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2012년 현재 수령이 약 300년을 훌쩍 넘긴 고목(古木)으로, 높이가 15m, 두께는 4.2m에 이른다. 느티나무는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었으며 이곳에서 거리제를 지냈다.
산 밑에는 산신제를 모시던 느티나무와 샘이 있었다. 이 나무도 수령이 상당히 오래되었으며 부근에 샘이 있어서 함께 정성을 드렸다.
[절차]
마을에서는 정월이면 택일을 하여 용왕제를 지냈다. 정월의 ‘첫 용날[辰日]’이 용왕제를 지내기에 가장 좋다 하여 흔히 이날 정성을 드렸다.
책력을 보아서 길일인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이 닿는 사람으로 제관을 선정한다. 제관은 네 명을 뽑는데, 전체적으로 제사를 주관할 제주(祭主)와 축관(祝官) 한 명씩과 제물 준비를 도와줄 유사(有司) 두 명이다. 제관은 동제 기간에 바깥출입을 삼가고 매일 찬물로 목욕재계하는 등 근신한다. 술·담배도 금하고 부부 합방도 하지 않는다. 대문 앞에는 금줄을 쳐서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는다.
제관은 물론이고 동민(洞民)들도 부정한 장소에 왕래를 삼가고 비린 생선 등을 먹지 않는다. 마을에 초상이 나거나 아이가 태어나면 부정하여 정성을 드릴 수가 없기에 날을 뒤로 미루어 다시 택일해야 한다.
동제 당일에는 제관 일행이 아침 일찍 제사 장소의 청소에 나선다. 산제당에 올라가서 나무 주변과 샘을 깨끗이 청소한다. 샘을 품고 새로이 샘물이 솟으면 그 물을 떠다가 제물을 마련한다. 이 산제샘도 저수지 근처의 쪽샘만큼이나 중요한 장소이다.
제사 비용은 가가호호 성의껏 나누어 낸다. 풍물패가 집집이 다니면서 터를 눌러 주는 가운데 쌀과 돈을 걷었다. 제물은 돼지머리·백설기·탕·삼색과실 등을 장만한다. 제사 비용이 넉넉하게 걷힌 해에는 돼지를 통째로 잡아서 올리기도 하는데, 어느 해에는 돼지를 무려 두 마리나 잡기도 하였다. 이 모든 제물은 제관 집에서 정성껏 마련한다.
이윽고 저녁이 되면 풍물패들이 나와서 한껏 흥을 돋운다. 제관 집에 모인 일행은 준비한 제물을 가지고 산제당으로 향한다. 산신에게 준비한 제물을 차려 놓고 정성을 드리고 나서 마을 가운데에 있는 느티나무로 향하며 거리제를 지낸다. 제관 일행이 쪽샘으로 향하는 것은 자정이 가까울 무렵이다. 샘가에 제물을 차리고 제관은 잔을 올리고 절을 한다. 마지막 잔을 올린 다음에는 마을의 무사태평을 비는 소지를 올린다. 제일 먼저 용왕 소지를 올리고 가가호호 소원하는 바를 빌어주며 소지(燒紙)[부정을 없애고 소원을 빌려고 흰 종이를 사르는 일]를 올린다.
[부대 행사]
이처럼 용왕제를 지내고 나면 간단하게 음복을 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이튿날 주민들은 마을 회관에 모여서 남은 제물을 나누어 먹고 제사 비용을 결산한다.
[현황]
오늘날 쌍용동은 옛 마을의 정취를 느끼기 어려울 만큼 개발이 되었다. 큰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면서 원주민을 만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를 제외하면 산신제를 지내던 느티나무와 샘은 없어진 지가 오래되었고, 용왕제를 지내던 쪽샘도 그 위치를 파악하기가 어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