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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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竝川里-山神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 6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성복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병천 6리에서 매년 정초에 농사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개목이 산신제는 매년 정초에 길일을 택한다. 그러나 만약 제를 앞두고 마을에서 초상이나 출산 등 부정한 일이 있으면 정해진 날짜에 산신제를 지내지 못하고 다시 날을 잡는다. 심지어 소나 개가 죽거나 새끼를 낳아도 부정하다고 하여 제일을 연기한다. 마을에서는 ‘산 부정’[출산]을 ‘죽은 부정’[초상]보다 더욱 금기시하여 짐승이 새끼를 낳아도 다시 택일을 했던 것이다.
제관은 제주(祭主)와 유사(有司)로 구분된다. 제주는 헌작(獻爵)[술잔 올리기] 및 소지[부정을 없애며 소원을 빌려고 사르는 흰 종이] 올리기 등 전반적인 제를 주관하고, 유사는 제물의 준비를 도맡아 하는 사람이다. 제삿날을 고를 때 집안에 초상이 있는 사람, 월경이나 임신한 산모가 있는 집, 기타 우환이 있는 사람은 제외하고 길인인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을 보아 깨끗하고 정갈한 주민을 뽑는다. 제관과 유사로 지목되면 대문 앞에 왼새끼를 꼬아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펴서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는다. 그리고 제를 마치는 날까지 찬물로 목욕재계를 하며 정성을 드린다.
산신제의 비용은 집집이 나누어 내어 충당하되 제물을 사는 유사가 자신의 돈으로 먼저 지출하고 나서, 산신제를 마치고 결산을 하는 대동 회의 때 지출 금액을 보고한 뒤 돌려받는다. 제물은 쇠고기, 삼색과실, 떡, 통북어, 메 등이다. 유사가 제물을 사러 시장을 오갈 때에는 상여, 초상집 등 부정한 것이 눈에 띄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한다. 또한 시장에서는 상인과 흥정을 벌이거나 깎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
[연원 및 변천]
병천리 개목이 산신제의 연원은 알 수 없고 예로부터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고자 전하여 내려오는 오랜 전통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산신제를 잘못 지내거나 제관의 정성이 부족하면 반드시 마을에 우환이 생긴다 하여 온 마을 사람들이 지극정성으로 제를 지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산신제는 한낱 부질없는 미신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1990년대에는 젊은 층의 반대에 부딪혀 중단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제당은 마을 뒤편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본래는 초옥 단칸이었는데 40여 년 전에 이를 개축하여 기와로 지붕을 얹었다. 과거에는 매년 가을걷이를 마치고 주민들의 이엉을 얹었는데 그 일이 번거로운 까닭에 새롭게 단장한 것이다. 당내에는 산신도(山神圖)나 위패를 봉안하지는 않고 단지 떡시루와 제기를 보관했다.
[절차]
제사 당일 아침 제관과 유사는 아침 일찍 산제당으로 올라가서 제당을 말끔히 청소한다. 아울러 산제샘[산제를 지낼 때 사용하는 샘]을 품고 정비하여 맑은 물이 고이면 그 물로 손발을 씻고 제수를 준비한다. 제물이 차려지면 기제사와 유사한 절차로 산신에게 헌작·재배하며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가장 먼저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만동 소지(萬洞燒紙)를 올린다. 이어서 제관과 유사의 소지를 올리고 가가호호 세대주의 소지를 불사른다. 제관은 소지를 올리면서 그 사람의 이름과 생년을 산신에게 고한 뒤 고사 덕담으로 한 해 동안 무탈하고 소망하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축원한다. 마치면 간단하게 음복하고 마을로 내려온다.
[부대 행사]
산신제를 마친 뒤에는 음복을 겸하여 온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동 회의를 열어서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고 결정한다. 특히 유사는 산신제에 소요된 제사 비용을 공개하고 결산을 하는데, 집마다 금액을 산정하여 나누어 낸다. 한편, 예전에 산신제를 지낼 때에는 집집이 떡시루를 준비하여 가정의 평안과 새해의 소망을 기원했다.
[현황]
병천리 개목이 산신제는 20여 년 전에 중단되었다. 산신제를 주관해 온 노인들이 대부분 세상을 뜬 데다가 이를 계승해야 할 젊은 구성원들에게 더는 지속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신제를 금기시하는 특정 종교의 영향도 산신제가 중단되는 요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