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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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台里金湖山神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삼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성복 |
의례 장소 | 산제당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삼태리 금호 마을 뒤편 매봉산 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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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민간 의례|동제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11~12월 |
신당/신체 | 산제당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풍세면 삼태리에서 매년 음력 11~12월에 농사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산신제는 매년 가을걷이를 마친 동짓달이나 섣달 중에 산신이 내려온다는 산신 하강일(山神下降日)로 길일을 택하여 모신다. 산신제는 동계(洞契)가 주관하여 거행된다. 예전에는 마을에서 식견이 있고 통솔력이 있는 사람을 동유사(洞有司)로 선정하여 그가 제삿날의 택일, 주당(主堂)·축관(祝官)의 선출 등을 책임지도록 하였다. 제관을 겸하여 제물을 준비하는 주당은 마을에서 부정이 없고 나이가 지긋한 노인을 선출하되, 길일인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을 보아 주민 중에서 부부가 모두 가장 길한 사람이 맡는다.
주당으로 선정되면 부정한 것이 눈에 띄지 않도록 사흘 전부터 외출을 삼간 채 치성을 드려야 한다. 이를 위하여 대문 밖에 황토를 펴서 주민들의 출입을 막고, 마을 입구와 공동 우물에도 황토를 편다. 주당은 산신제를 마치는 날까지 술과 담배, 육식을 금하고 매일 저녁 찬물로 목욕재계한다. 마을에서도 살생을 하지 않고 부정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한다.
제물은 생물로 된 돼지머리와 산적, 석 되 세 홉[약 5,952㏄]의 백설기, 포, 조라술 등인데 이것들을 사려고 시장에 나갈 때에는 상여나 초상집이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한다. 또 상인과 값을 흥정하거나 깎지 않고 달라는 대로 주어야 한다.
[연원 및 변천]
삼태리 금호 산신제의 심원을 알 수 없으나 그 유래는 돌림병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옛날에 마을에 돌림병이 나돌아 근심이 많았는데 주민들이 정성을 모아 산신제를 지내자 차츰 안정을 찾게 되었고 이후로는 마을에서 매년 산신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한다고 한다. 금호 마을에서는 산신제를 가장 중요한 마을 일로 인식하여 온 마을 사람들이 극진하게 제를 지냈으나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1999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제당은 마을 서쪽 매봉산 아래에 있다.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산제당이 있는데, 단칸 함석지붕에 크기는 16~20㎡ 규모이고 정면의 문은 외여닫이로 설치되었다. 제당 내에는 산신도나 위패는 봉안하지 않고, 단지 판목으로 선반을 설치하여 제기를 보관하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 보관된 제기는 사기로 구운 밥그릇 두 개, 잔대 두 개, 술잔 두 개, 그리고 커다란 떡시루와 항아리가 놓여 있다. 산제당은 본래 초옥이었던 것을 1960년 경자년(更子年)에 중수한 것이다.
[절차]
당일 아침에는 산제당으로 가는 길을 닦고 제장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아울러 공동 우물에서 물을 떠서 조라술을 담는다. 날이 저물면 주당·축관은 심부름하는 주민 몇몇과 함께 제물을 지고 산제당으로 향한다. 그리고 산제당에 제물을 차려 놓고 유교식 절차에 따라 분향(焚香)·강신(降神)·초헌(初獻)·독축(讀祝)·분축(焚祝)·아헌(亞獻)·첨작(添酌)·종헌(終獻)·소지(燒紙)의 순으로 제를 지낸다. 산신제의 마지막 절차인 소지는 부정을 없애고 소원을 빌려고 흰 종이를 사르는 것으로, 부정한 집을 제외하고 집안의 호주를 위한 대주 소지(大主燒紙)를 집마다 모두 올려 준다. 제를 마치면 음복을 하고 하산한다.
[부대 행사]
산신제를 마친 이튿날 주당은 주민들을 초청하여 음복을 나누고 함께 점심을 먹는다. 이 자리에서 산제당에 올린 떡은 조금씩 떼어 집집이 골고루 나누어준다.
[현황]
삼태리 금호 산신제는 1999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된 상태이다. 제를 중단한 까닭은 산신제를 주관했던 노인층이 모두 타개하고 젊은이들은 서로 주당이 되기를 꺼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