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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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世長里 |
영어공식명칭 | Sejang-ri |
분야 | 지리/인문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세장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현미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세장리는 진보면의 북서단(北西端)에 있는 지역으로 행정리는 세장리 한 개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황골, 옛터골, 세장 등이 있다.
[명칭 유래]
옛 시(詩) 가운데 영곡(永谷)이란 말이 나오니 이는 길다란 동리(洞里)란 뜻이다. 세장리(世長里)의 지형이 긴 골짜기로 되어 있어 일제강점기에는 누용실이라고도 했으니 용이 누워 있는 것처럼 길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때는 법정동 이름도 와룡동(臥龍洞)이었다 한다. 자연마을인 황골은 황곡동이라고도 불리는데 황씨(黃氏)들이 많이 살아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과 성냥에 쓰는 황을 구웠기 때문에 황골이라 한다는 설이 있다. 옛터골은 한 청년이 사찰을 세우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 곳에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옛터골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진보군 서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하리면의 후평동 일부를 병합하여 세장동이라 해서 청송군 진보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에 군조례에 의해 세장동이 세장리로 개칭되었다.
[자연환경]
북쪽의 영등산(嶺登山)[505.2m] 산줄기와 서쪽의 광덕산(廣德山)[489m] 산줄기 사이에 있는 세장리는 이름처럼 북에서 남으로 길게 뻗어 있는 골짜기를 따라 농경지가 만들어져 있다. 동쪽의 광덕산 줄기는 남에서 북으로 가면서 완만해지는 반면 서쪽의 영등산 줄기는 북에서 남으로 가면서 완만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세장리를 종단하는 골짜기로 흘러든 물들은 남으로 내려가 반변천(半邊川)에 합류한다. 반변천은 영양군 북쪽에 솟아 있는 일월산(日月山)[1,219m]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다가 청송군 진보면에서 많은 지류를 합하면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안동시의 임하호로 흘러들어간다. 반변천은 진보면을 지나면서 심한 감입곡류를 이루고 있지만 세정리의 남쪽 부분에서는 비교적 굴곡이 심하지 않다.
[현황]
행정리는 세장리 한 개로 이루어져 있다. 2016년 12월 말을 기준으로 면적은 8.6㎢이며, 인구는 58가구에 126명[남자 67명, 여자 59명]이다. 세장리는 서쪽으로는 진보면 부곡리, 동쪽으로는 영양군 입암면 교리와 병옥리, 북쪽으로는 영양군 입암면 산해리와 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진보면 광덕리, 진보면 이촌리 및 후평리와 경계하고 있다.
마을들은 세장리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하천을 따라 형성되어 있으며, 하천과 평행하게 도로가 건설되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자연마을로는 황골, 옛터골, 세장 등이 있다. 세장리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자연마을은 외가마골이며, 그 아래에 황골이 있다. 황골 위쪽에는 황곡지라는 저수지가 있다. 가옥들은 한 곳에 밀집해 있지 않고 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산재해 있으며, 현재는 몇 채 남아 있지 않다.
황골 아래에는 옛터골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 역시 마을 규모가 많이 축소된 상태로 몇몇 집만이 예전에 이곳이 마을이었음을 알리고 있다. 세장은 세장리의 본리로 현재 세장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세장의 긴 골을 사이에 두고 양편에 가옥들이 줄지어 있는데, 같은 세장에서도 골짜기를 기준으로 해가 뜰 때 햇빛을 먼저 받는 서쪽을 양지마을, 해가 뜰 때 그늘이 지는 동쪽을 음지마을이라 부른다.
주요 문화재로는 1986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1호로 지정된 백호서당(栢湖書堂)이 있다. 이 서당은 1757년(영조 33)에 지어진 서당으로 조선 숙종 때 영남학파의 학자인 존재(存齋) 이휘일(李徽逸)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89년 임하댐 건설로 인해 현재의 위치[진보면 양지길 7-249]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