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215 |
---|---|
한자 | 豆峴里 |
영어공식명칭 | Duhyeon-ri |
분야 | 지리/인문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두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진원형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두현리는 현서면의 북동부에 있는 지역으로 행정리는 두현1리와 두현2리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파재·두현, 생초전, 고평, 여우동, 대거리, 소거리가 있다.
[명칭 유래]
옛날 이 마을로 가는 고개에 팥을 많이 경작하여 팥재·파재 또는 두현(豆峴)이라 불렀으며, 그것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 한다. 생초전은 도로와 떨어졌으며 골이 깊고 입구가 나무로 막혀서 피난처로 적합하여 임진왜란 당시 피난 온 정씨(鄭氏)가 처음 거주하였다. 그 후 어떤 도승이 이 마을을 지나며 녹색 풀이 많아 생초전(生草田)이라는 마을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고평은 약 450년 전 조성경이라는 사람이 마을을 처음 개척하였으며, 해마다 풍년이 들어 집 안에 곡식을 둘 곳이 없어 곡물을 저장하는 큰 창고가 들판의 곳곳에 있었으므로 고평(庫坪), 곳집들이라 부르게 되었다.
여우동(如愚洞)은 약 200여 년 전 한학자로 덕망이 높았던 조씨(趙氏)가 개척한 마을이며, 그의 호를 따서 여우동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여동(如洞)이라 부르고 있다. 대거리(大巨里)는 조선시대 선조 때 대암공(大庵公) 박성(朴惺)의 3세손이 역마산 아래 다른 계곡을 개척하여 입주하니 소근리에 비하여 지역이 넓다 하여 붙인 이름으로, 지금은 대거리라 부른다. 소거리(小巨里)는 임진왜란 때 현일송이란 사람이 피난 와서 역마산 아래 협소한 골짜기를 개척하여 소근리(小斤里)라 하였다가 지금은 소거리로 바뀌었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청송군 현서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두현동에 소거·생초전과 현내면의 대거리·중리의 일부를 병합, 두현동이라 하여 현서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에 군조례에 의해 두현동이 두현리로 개칭되었다.
[자연환경]
두현리는 대부분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두현리의 북부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길안천(吉安川)이 흐르며 길안천 유역은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다. 길안천의 주변 산지에서는 여러 갈래의 계곡들이 길안천 방향으로 뻗어 내리고 있다.
[현황]
행정리는 두현1리와 두현2리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 2016년 12월 말 기준으로 면적은 13.3㎢이며, 총 147가구에 259명[남자 136명, 여자 123명, 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두현리는 동쪽으로 안덕면 감은리·복리·덕성리, 서쪽은 현서면 덕계리, 남쪽은 현서면 백자리, 남서쪽은 현서면 천천리, 북쪽은 안동시 길안면과 접하고 있다.
두현리에서는 국가지원지방도68호선이 길안천 변을 따라 통과하여 동쪽으로는 안덕면으로 연결된다. 서쪽으로는 바로 옆 덕계리에서 국도35호선과 만나는데, 국도35호선은 북으로 안동시 길안면, 남으로는 영천시 방향으로 향한다.
두현리의 길안천 변에는 파재마을이 있는데, 길안천 북쪽 산지의 남사면 기슭에 위치한 마을을 양지파재, 길안천 남쪽에 있는 마을은 반대로 음지파재로 부른다. 양지파재 건너편 산지에는 생초전마을이 있다. 양지파재와 음지파재 사이를 통과하는 국가지원지방도68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 고평마을이 있다. 두현리와 안덕면 감은리와의 경계 지점에는 남쪽 산지에서 골짜기가 길게 뻗어 내려와 있으며, 골짜기 안으로 군도9호선이 통과하고 있다. 골짜기 초입은 여우동마을이 나오며, 남쪽으로 계속 들어가면 서쪽의 조금 넓은 골에는 대거리마을, 동쪽의 좁은 골에는 소거리마을이 입지해 있다. 군도9호선은 대거리마을을 지나 서쪽 현서면 천천리를 통과하며, 현서면 구산리에서 국도35호선에 진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