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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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閔樞 |
영어공식명칭 | Min Choo |
이칭/별칭 | 천극(天極),명지재(明智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526년 - 민추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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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68년 - 민추 서당 건립 후학 양성 |
몰년 시기/일시 | 1604년 - 민추 사망 |
출생지 | 경상도 청송도호부 안덕현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
거주|이주지 | 경상도 청송도호부 안덕현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
수학|강학지 | 안동대도호부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여흥 |
대표 관직|경력 | 통정대부 |
[정의]
조선 전기 청송 출신의 학자.
[개설]
민추(閔樞)[1526~1604]는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출신의 학자이다. 청송 지역에서 퇴계 이황의 학풍을 일으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가계]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천극(天極), 호는 명지재(明智齋). 6대조 할아버지는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을 지내고 여성군(驪城君)에 오른 민무질(閔無疾)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적순부위(迪順副尉) 사맹(司猛)을 지낸 민촉(閔矗), 고조할머니는 안인(安人) 영산신씨(靈山辛氏)로 신유현(辛有賢)의 딸이다. 증조할아버지 남은(南隱) 민흥(閔興)이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에 처음 정착한 이래로 후손들이 세거해 왔다. 증조할머니는 의인(宜人) 경주손씨(慶州孫氏)로 손사성(孫士晟)의 딸이다. 할아버지 민세경(閔世卿)은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으로 병절교위(秉節校尉) 사정(司正)을 지냈으며, 아버지는 민상(閔祥)이다.
[활동 사항]
민추는 어려서 천성이 맑고 순수하였으며 행실이 돈독했다. 안동에 살고 있는 고모부 청계(淸溪) 김진(金璡)[1500~1580]에게 학문을 수학하면서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오봉(梧峰) 신지제(申之悌)와 도의로 사귀었다. 1568년(선조 원년) 안덕면 명당리에 명지재서당(明智齋書堂)을 창건하여 후진을 양성하였다. 문장을 짓는 것보다 성리학 연구에 매진하여 인간 심성과 우주의 심오한 원리를 탐구하는 데 노력하였다.
이후 학생이 늘어나자 안덕면 장전1리 고산(孤山)으로 확장 이건하고, 참봉(參奉) 서기종(徐起宗)이 산장을 맡았으며, 민추의 차남 구벽재(扣璧齋) 민근효(閔根孝)[1550~1630]가 그를 도와 후진을 양성하게 되었다. 민추의 학문과 인품을 알아본 청송부사(靑松府使) 김우굉(金宇宏)[재임 1583년 12월~1586년 7월]과 김홍징(金洪微)[재임 1599년 2월~1601년 3월]이 서당 운영에 많은 재정적인 지원을 하여 당시 일대의 선비 중 그의 문하에서 배우지 않은 이가 없다고 할만큼 수많은 문도들을 배출하였다. 민추의 이러한 열정적인 가르침 덕분에 청송 지역의 학문과 예법이 제대로 설 수 있었다.
민추의 문인으로는 동계(東溪) 조형도(趙亨道), 하음(河陰) 신즙(申楫), 풍애(楓崖) 권익(權翊), 덕계(德溪) 이준성(李俊成) 등이 있었다. 이들 문인이 다시 퇴계 문인들의 문도가 됨으로써 퇴계학이 청송에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덕문정로(德門正路)』, 『태극무극변(太極無極辯)』,『강의록(講義錄)』,『안인의인론(安仁義仁論)』, 『이의변(利義辯)』, 『하락수(河洛數)』, 『건곤선(乾坤設)』, 『함항설(咸恒設)』, 『사례찬요(四禮纂要)』 등 20여 편 등이 있었다고 하나, 1631년 대화재로 전소되어 현재는 전하는 것이 없다.
[상훈과 추모]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제수되었으며, 묘비의 비문은 하겸진(河謙鎭)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