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7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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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東道 |
영어공식명칭 | Cho Dongdo |
이칭/별칭 | 경망(景望),지악(芝嶽)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수환 |
출생 시기/일시 | 1578년 - 조동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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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조동도 임진왜란 창의 |
몰년 시기/일시 | 1668년 - 조동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36년 - 조동도 금대정사 배향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592년~1598년 - 임진왜란 |
거주|이주지 | 청송도호부 - 경상북도 청송군 |
거주|이주지 | 지악정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
활동지 | 화왕산성 - 경상남도 창녕군 |
활동지 | 팔공산 - 대구광역시 동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제용감부정 |
[정의]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경망(景望), 호는 지악(芝嶽).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조지(趙址), 어머니는 습독(習讀)을 지낸 권회(權恢)의 딸 증(贈) 정부인(貞夫人) 안동권씨(安東權氏)이며, 5형제 중 막내이다. 조동도를 비롯해 형인 조수도(趙守道), 조형도(趙亨道), 조순도(趙純道), 조준도(趙遵道)가 모두 현달하였다. 할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조정언(趙庭彦), 증조할아버지는 의금부경력(義禁府經歷)을 지낸 조연(趙淵), 부인은 습독(習讀)을 지낸 이양성(李養性)의 딸 영인(令人) 월성이씨(月城李氏)이다.
[활동 사항]
조동도(趙東道)[1578~1668]는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세의 둘째 형 조형도와 함께 곽재우(郭再祐)의 의병 부대에 합류하였다. 1594년(선조 27)에는 청송도호부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고을 사람들이 조동도를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1596년(선조 29)에는 팔공산(八公山) 전투에 참전하여 적장 을해(乙海)의 목을 베고 일본군을 물리쳤다. 이듬해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조형도와 함께 화왕산성(火旺山城)을 방어하였다.
전란이 끝난 후 공적이 있던 사람은 포상을 받았으나, 조동도는 고향으로 내려와 조용히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1624년(인조 2)에는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 지악정(芝嶽亭)을 짓고 그곳에 머물렀다. 말년에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곡산훈도(谷山訓導)와 제용감부정(濟用監副正)에 임명되었다.
[저술 및 작품]
조동도의 행적을 엮은 2권 1책의 『지악선생실기(芝嶽先生實紀)』가 전한다.
[묘소]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의 금대(金臺) 안산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1736년(영조 12)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 조지, 조수도, 조동도, 조함수(趙咸遂), 조함신(趙咸新)을 배향하는 금대정사(金臺精舍)[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7호]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