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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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件岱山烽燧臺- |
영어의미역 | Beacon Fire Station of Geondaesan Mounta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희돈 |
[정의]
경상북도 칠곡 지역에 위치한 조선시대 봉수대 터.
[개설]
조선시대 선산과 칠곡 사이에 위치한 인동 지역에 건대산 봉수대가 있었다. 산명(山名)이 『비국등록(備局謄錄)』에는 건대산(件岱山),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건대산(件臺山) 등으로 다르게 등재되어 있다. 일명 봉화산(烽火山)이라고도 한다.
[변천]
인동(仁同) 지역은 조선시대에 선산과 칠곡 사이의 작은 현이었다. 도호부라는 높은 품계를 받은 것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가 왜적을 크게 무찔렀기 때문이다. 지형으로 볼 때 금오산에서 뻗은 산줄기가 건대산(件代山)·옥산(玉山)·천생산(天生山)·유악산(流嶽山)·황학산(黃鶴山) 등에 이어지면서 인동 전체를 감싸고 있으며 인동의 중앙부를 낙동강이 관류하고 있었다. 당시에 건대산과 박집산(朴執山)에 봉수가 있어 성주와 상주 지역을 연결하였다.
[현황]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臨洙洞)의 후산으로 구포동과 경계 지점의 건대산(件岱山) 상봉에 봉수대의 유지가 있다. 현재 산정(山頂)에는 터[遺址]만 남아있을 뿐 유구(遺構)는 없다. 1970년대까지는 일부 유구가 잔존하였으나 이후 인근 군부대에서 이곳을 헬기장으로 삭평한 뒤 현재는 1~2단의 석단과 그 봉수대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의의와 평가]
『인동부읍지(仁同府邑誌)』의 봉수조(烽燧條)에는 “건대산 봉수는 인동부의 서쪽 3리에 있는데 남쪽으로 약목(若木)의 박집산(朴執山)에 응하고 북쪽으로 선산 석현(石峴)에 응한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 봉수대의 설치 연혁 및 봉군 배치(烽軍 配置)에 관한 것은 전혀 알 수 없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병고 봉수조(兵考 烽燧條)에 의하면 전국에 6백여 개소의 봉수대가 있었으며, 각 봉수대에는 군사 6인, 오장 2인을 배치하되 모두 봉수대 근처의 거주민으로 임명하였다. 봉수에 관한 업무는 병조(兵曹)에서 관장(管掌)하였다. 봉수대에 배속(配屬)하는 봉군(烽軍)은 타역(他役)으로 충족(充足)할 수 없으며 오로지 망보는 데만 종사하게 하였다고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