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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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世虞 |
영어음역 | Jo Seu |
이칭/별칭 | 백원(伯元),석당(石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헌규 |
[정의]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백원(伯元), 호는 석당(石塘). 창성부원군에 봉해지고 벼슬이 보국대장군에 오른 조계룡(曺繼龍)를 시조로 하는 창녕조씨는 1540년(중종 35)에 성주목사를 지낸 후 창녕에서 칠곡[팔거]으로 이거하여 세거지를 정한 조세우를 입칠곡 시조로 하고 있다. 아버지는 부사 조상겸(曺尙謙)이다.
[활동사항]
1513년(중종 8)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어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사간원 정언에 이르렀다. 1537년(중종 32)에 김안로(金安老) 탄핵에 앞장서서 세 차례나 상소하여 사림(士林)의 기강(紀綱)을 세운 강직한 성품을 가졌고,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등 많은 현인과 교우하였으며, 1540년(중종 35)에 성주목사를 지내고 창녕에서 칠곡으로 이주하여 세거지를 정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동년창수록(同年唱酬錄)』과 『실기(實記)』가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에 소술재를 세워 후손들이 추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