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7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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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暢基 |
영어음역 | Yi Changgi |
이칭/별칭 | 병기(炳基)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김윤오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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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면 왜관동 841[현 왜관리] |
성별 | 남 |
생년 | 1913년 12월 24일 |
몰년 | 1978년 9월 13일 |
본관 | 벽진 |
[정의]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913년 12월 24일 칠곡군 왜관면 왜관동 달오[月塢]마을에서 태어났다. 1931년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에 동맹휴학을 주동하여 퇴교당하고, 1932년에 청년동지회를 결성하여 농촌계몽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1938년에 체포되어 미결수로 고초를 겪고 1941년에 석방되었다.
[활동사항]
왜관보통학교(倭館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28년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大邱公立高等普通學校)[현 경북고등학교]에 입학하여, 4학년 때인 1931년 11월에 친일 교유(敎諭) 배척 동맹휴학을 주동하여 퇴학당했다. 1932년 4월에 고향 왜관(倭館)에서 정행돈(鄭行敦), 이두석(李斗錫), 박몽득(朴夢得) 등과 함께 왜관청년동지회(倭館靑年同志會)를 결성하고 농촌계몽과 야학을 통해 민족의식을 교육하였다. 1938년 2월 19일에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1939년 10월 25일에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이송된 후 미결수로 고초를 겪다가, 1941년 3월 7일 대구지방법원 예심에서 면소(免訴)·석방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0년 5월 5일 ‘애국지사이창기선생추모비(愛國志士李暢基先生追慕碑)’를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의 애국동산에 세우고, 매년 광복절에 추모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