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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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慕仁齋 |
영어의미역 | Moinjae Pavilion for Purificatio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오산리 410-1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이호열 |
성격 | 재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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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목조 건축|중당협실형 |
건립시기/연도 | 일제강점기/1924년 |
관련인물 | 윤성거 |
정면칸수 | 4칸 |
측면칸수 | 1칸 반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오산리 410-1[외오] |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오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재실.
[개설]
모인재(慕仁齋)는 윤성거(尹聖擧)[1612~1688]를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1924년에 지은 정면 4칸, 측면 1.5칸 규모의 재실 건축이다. 윤성거는 자가 여징(汝徵), 호가 근암(槿菴)으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윤환(尹煥)의 둘째아들로 1612년(광해군 4)에 태어나 무과에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일어난 병자호란 때 청이 왕세자를 볼모로 데리고 갈 때 팔장사(八壯士)와 더불어 사절로 중국 심양(瀋陽)에 갔으며, 인동부사(仁同府使)로 재임 중 향년 76세로 사망했다.
[위치]
모인재는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오산리 외오마을 진입로 왼편에 자리 잡고 있다.
[형태]
모인재는 정면 4칸 측면 1.5칸의 한식 목조 건축으로, 남동향하고 있다. 평면은 2칸 대청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1칸 크기의 온돌방을 둔 형태이며, 앞쪽에는 마당을 향해 개방된 반 칸폭의 툇마루가 길게 놓여 있다. 대청 뒷벽에는 매 칸마다 두 짝의 판문을 달았으며, 밖으로 폭이 좁은 마루를 놓았다. 온돌방 뒤에는 깊이 60㎝ 정도의 벽장을 시설하여 생활용품을 보관할 수 있게 했다. 온돌방 정면, 대청과 방 사이에는 모두 두 짝의 여닫이문이 달려 있다.
구조는 간략한 3량가의 민도리집으로, 자연석 기단 위에 다듬은 원형 초석 또는 사각형 막돌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우고 지붕틀을 받도록 했다. 정면에만 다듬은 원형 초석에 둥근 기둥을, 나머지는 모두 막돌 초석에 사각기둥을 세워 대들보를 받게 했다. 정면만 소로를 사용하여 꾸몄으며,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건물의 네 모퉁이에는 말굽서까래 수법으로 서까래를 걸었다.
[현황]
모인재는 경사지를 정지한 대지에 자리 잡고 있다. 건물 남쪽에 사주 문을 내고 주위에 시멘트 블록 담을 쌓았으며, 마당을 콘크리트로 포장하였다. 최근에 비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붕에 우레탄을 덮었으며, 노출된 기둥, 대들보, 서까래 등에는 붉은색으로 단청했다. 지붕과 기와 끝, 목재 끝, 벽면에는 흰색 수성 페인트칠을 했다.
[의의와 평가]
1924년에 지은 모인재는 전통적인 중당협실형 재실 건축의 평면을 따라 지은 재실이다. 간략한 구조, 크고 장식적인 창호, 온돌방 뒤의 벽장 등이 근대기 경상북도 칠곡군 재실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