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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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星州李氏 |
영어의미역 | Seongju Yi Clan |
이칭/별칭 | 농서 이씨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포남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헌규 |
[정의]
이순유를 시조로 하고 이석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세거 성씨.
[연원]
시조(始祖) 이순유(李純由)는 아우 이돈유(李敦由)와 함께 신라에 벼슬하여 재상(宰相)에 올랐으나 신라가 망하게 되자 절개를 지켜 고려 때 벼슬을 하지 않고 이름을 극신(克臣)이라 고쳐 경산(京山)[현재의 성주]부에 옮겨 살며 대대로 호족(豪族)을 이루니 고려 때에 누대(累代)에 걸쳐 후손들을 호장(戶長)으로 삼았다. 고려 고종 때 12세손 이장경(李長庚)이 호장을 지내면서 덕망이 높았고, 아들 5형제가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공이 많아 이장경을 삼중대광좌시중도첨의정승지전이사사상호군(三重大匡左侍中都僉議政丞知典理司事上護軍)에 추증, 성산 부원군에 추봉(追封)하였다. 이장경의 손자 이승경(李承慶)이 원나라에 가서 벼슬할 때 공이 많아 원나라 황제가 선칙(宣勅)하여 조부(祖父) 이장경을 농서군(隴西郡)에 추봉하였다. 이런 연유로 이장경을 중흥 시조(中興始祖)로 하여 세계를 계승(繼承)하였다. 본관은 농서군에 추봉되어 농서이씨(隴西李氏)라고도 하며, 가세(家勢)가 크게 번성(繁盛)해진 당시 성주목(星州牧)의 지명(地名)에 따라 성주 이씨라 하였다.
[입향 경위]
약 500여 년 전 성주 이씨 중시조 농서군(隴西郡) 이장경의 15세손인 통사랑(通仕郞)을 지낸 이석(李碩)이 성주군 용산에서 포남2리로 옮겨와 살면서 하게남(下揭南)이라고 칭하였다. 그 후 하포남으로 변경하여 불리고 있다. 칠곡군 동명면 금암리와 송산리에도 집성(集姓)을 이루어 살았다.
[현황]
인구 주택 총조사 「성씨 및 본관 보고서」에 의하면 2000년 410여 가구 1,340여 명이 칠곡군 관내에 살고 있다. 석적읍 포남리에는 성주이씨 단일성 집성촌으로 70여 세대가 살고 있었으나 지금은 50여 세대가 남아 있다. 칠곡군 동명면 금암리와 송산리에도 집성을 이루어 살았던 유적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포남리에 학은(鶴隱) 이극룡(李克龍)의 추모지소인 포남정사,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금암리에 노석(老石) 이형휘(李亨輝)의 추모지소인 노석재, 도은(道隱) 이봉화(李鳳華)의 추모지소인 경은재, 송재(松齋) 이철호(李轍浩)의 추모지소인 벽서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