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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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烽燧 |
영어의미역 | Beacon Fire Stati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미숙 |
[정의]
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분포하는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과 시설.
[개설]
봉수는 가락국의 수로왕 설화에서 보이듯이 삼국시대부터 실시되었으며, 고려시대 1149년(의종 3) 조진약(曺晋若)의 건의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정비되었다. 조선시대 세종대에는 봉수대 시설, 봉군(烽軍)의 신분, 봉화 홰(炬)의 수를 다시 정하고, 봉수의 노선을 구분하여 봉수제도의 근간을 마련하였다. 1894년 갑오경장을 계기로 봉수제도는 폐지되었으며, 1895년 봉수군이 해체되었다.
봉수는 위치와 역할에 따라 경봉수(京烽燧)·연변봉수(沿邊烽燧)·내지봉수(內地烽燧)로 나뉜다. 전국의 봉수망은 5개의 직봉(直烽) 노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직봉에는 다시 여러 간봉(間烽) 노선이 딸려 있다. 충주를 지나는 노선은 경상도 동래에서 출발한 제2노선에 해당한다. 직봉 노선은 경상북도와 경계가 되는 단양의 죽령산(竹嶺山)에서 단양 소이산(所伊山)-청풍 오현(吾峴)-충주 심항산(心項山)-마산(馬山)-음성 가섭산(迦葉山)-망이산성(望夷山城)을 거쳐 경기도 죽산의 건지산(巾之山)으로 연결된다. 간봉 노선은 계립령을 넘어와 연풍 마골재[馬骨岾]-연풍 주정산(周井山)-충주 대림산성(大林山城)-마산으로 연결된다.
충주에는 직봉 노선과 간봉 노선상에 위치한 봉수가 6곳이 있다. 직봉 노선상에는 심항산 봉수·마산봉수·망이산 봉수가 있으며, 간봉 노선상에는 마골재 봉수·충주 주정산 봉수·대림산 봉수가 있다. 이 가운데 마산봉수는 직봉 노선과 간봉 노선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다.
[심항산 봉수]
현재 2곳에 존재하는데, 하나는 조선시대에 현재의 충주시 안림동과 종민동 사이의 계명산 정상에 설치한 봉수로 충주목에서 동쪽으로 15리 되는 곳에 해당된다. 이 봉수는 동쪽으로 청풍 오현(吾峴)과 응하며, 서쪽으로는 익안(翼安) 마산과 통한다. 단양의 죽령을 넘어 서울로 향하는 제2거봉으로 중시된 봉수로 별장(別將) 1명과 감관(監官) 5명, 군인(軍人) 100명을 두었다. 정상에는 사각형으로 석축된 봉수대터가 남아 있다.
[마산봉수]
조선시대에 현재의 충주시 대소원면 대소리의 봉화산(烽火山) 또는 봉화뚝으로 불리는 곳에 설치한 봉수로 충주목에서 서쪽으로 25리 되는 곳에 해당된다. 이 봉수는 충청북도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낮은 곳에 있으며, 죽령을 넘어온 봉수로와 조령을 넘어온 봉수로가 합해지는 지점이다. 봉수대의 흔적은 파괴되어 찾아볼 수 없으나, 동쪽보다 서쪽이 높게 형성된 토대의 가장자리인 주연(周緣)만 확인된다.
[망이산 봉수]
조선시대에 현재의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 망이산성 내 설치한 봉수로 충주목에서 서쪽으로 110리 되는 곳에 해당된다. 동쪽으로 음성현 가섭산, 남쪽으로 진천현 소울산, 서쪽으로 경기 죽산현 건지산에 응하는 곳이다. 봉수대에는 별장 1명, 감관 5명, 군인 100명이 소속되었다. 봉수의 유지는 동서 22㎝, 남북 12㎝의 크기로 내벽과 외벽을 석재로 협축한 1.5m 정도의 두꺼운 석벽을 이루고 있다. 내벽의 높이는 약 1.5m이나, 외벽의 높이는 2~3m를 이루고 있다.
[마골재 봉수]
조선시대에 충주시 상모면 사문리와 미륵리 경계의 지릅재 남쪽 산봉우리에 설치한 봉수로 연풍현의 북쪽에 있다. 동쪽으로 문경의 탄항(炭項)과 통하며, 서쪽으로는 주정(周井)과 응하는 곳이다. 이 봉수는 웅천 천성보에서 시작되는 간봉에 소속되어 경상도에서 계립령을 넘어 만나는 충청도의 첫 봉수대이다. 봉수대에는 별장 1명, 감관 5명, 봉군 25명, 보 75명이 소속되었다. 현재 봉수대터에는 화강암 석재로 쌓은 석축이 붕괴되기는 했으나 다른 봉수에 비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충주 주정산 봉수]
조선시대에 현재의 충주시 상모면 온천리 산47-2번지 하주정산 정상에 설치한 봉수로 연풍현 북쪽으로 40리 되는 곳에 해당된다. 동쪽으로 마골재에 응하며, 북쪽으로 충주 대림성에 응하는 곳이다. 봉수대에는 별장 1명, 감관 5명, 봉군 25명, 보 75명을 두었다. 1995년 충북대학교 호서문화연구소에 의해 봉수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그 대체적인 윤곽이 확인되었으며, 현재는 복원되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림산 봉수]
조선시대에 현재의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 산410번지 대림산 정상에 설치한 봉수로 충주목에서 남쪽으로 10리 되는 곳에 해당된다. 남쪽으로 연풍 주정산에 응하며, 서쪽으로 마산에 응하는 곳이다. 봉수대는 말각방형으로 석축을 쌓아올린 부분과 그 바깥으로 원형의 낮은 석축이 암반으로 노출된 부분으로 구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