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5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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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沙器里倉內遺蹟 |
영어의미역 | Relics in Sagi-ri Changna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사기리 창내 |
시대 | 선사/석기 |
집필자 | 길경택 |
성격 | 유물산포지|한데 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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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사기리 창내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사기리 창내에 있던 구석기시대 한데 유적.
[위치]
사기리 창내 유적은 충주시 동량면 사기리 창내에 있었으나, 현재는 충주댐의 담수로 인해 수몰되었다. 이 유적을 조사할 당시에는 제원군 한수면 사기리에 해당되었으나, 1987년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충주시 동량면으로 편입되었다. 수몰되기 전 사기리 창내 유적은 남한강과 제천천이 만나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였다. 주변 환경이 좋고 생활하기 편리하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하안단구상이었기 때문에 선사인들의 살림터로서 충분한 조건이 갖춰져 있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79년 충주댐 건설로 인해 수몰되는 지역에 대한 문화 유적 지표 조사 과정에서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확인되었다. 1982년과 1983년에 충주댐 수몰 지역 문화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로 청주사범대학(현 서원대학교) 박희현 교수팀에 의해 2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한데 유적(open site)으로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세운 집터인 막집이 확인되었다.
[형태]
사냥용 막집으로 3~4명 정도의 인원이 중심축에 묶어 늘어뜨린 줄을 고정하기 위한 당김돌을 사용하여 약 10㎡ 넓이로 지은 것이다. 막집의 출입문 바로 밖에 화덕에 불을 피운 자리가 확인되었으며, 주변에서는 복숭아씨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
유물은 발굴 면적(250㎡)에 비해 많은 수인 5,000여 점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석영질 석기가 64%를 차지하며, 도구와 공구로 분류된 석기의 수는 각각 514점과 268점이다. 도구 514점 가운데 몸돌 석기가 119점(23%)으로 찍개류·양면 석기류·사냥돌 등이다. 격지 석기는 긁개류가 181점으로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둥근 긁개(round-scraper)가 많이 출토되었다. 그 밖에 자르개·째개·톱니날·홈날·새기개 등의 석기가 있다.
[의의와 평가]
사기리 창내 유적은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일상 생활 복원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돌날 제작 기법이 아직 본격적으로 채택되지 않은 점 등으로 보아 수양개 유적보다는 이른 시기에 형성된 유적으로 보인다. 보고자는 사기리 창내 유적의 연대를 둥근 긁개의 형태와 오리냐시안 잔손질 등의 제작 기법을 근거로 후기 구석기 시대 중기의 유적으로 판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