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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643
한자 忠州樓岩里古墳群
영어의미역 Ancient Tombs in Chungju Nuam-r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누암리 산 41|산 33|산 36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집필자 차용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3월 25일연표보기 - 충주 누암리 고분군 사적 제463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충주 누암리 고분군 사적 재지정
성격 고분|돌방무덤|돌덧널무덤|움무덤
건립시기/연도 신라|통일신라|고려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누암리 산 41지도보기|산 33지도보기|산 36지도보기
소유자 국유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누암리에 있는 신라시대·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 고분군.

[위치]

충주 누암리 고분군은 소일부락 서쪽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충주시의 중심부에서 서북쪽으로 약 5㎞ 떨어져 있으며, 탄금대를 지나 한강 서쪽 강변으로 이어지는 구릉지대가 해발 100m~130m의 봉우리를 이루고 작은 능선들이 있는 곳이 전체 범위가 된다. 이 구릉지대는 북쪽으로 능선이 이어져 을궁산장미산성에 이르기까지 무덤 떼가 계속 분포하며, 충주 고구려비의 남쪽으로 약 4㎞,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일명 중앙탑)의 서남쪽으로 2㎞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 중심이 된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80년 중원 문화권 설정을 위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고, 1983년 3월 30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36호로 지정되었다. 1989년에 돌방[석실] 1호분과 2호분이 발굴 조사되었다. 1990년과 1991년에는 28기의 신라와 통일신라시대의 돌방무덤[石室墳]과 고려시대의 돌덧널무덤[石槨墓]과 움무덤[土壙木棺墓] 등이 발굴 조사되었다. 중심부의 작은 범위에서만 봉토를 확인할 수 있는 무덤이 76기나 되고, 반경 1.5㎞ 이내에서 약 230여 기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형태]

고분의 형식 가운데 가장 중심을 이루는 것은 굴식 돌방봉토분[橫穴式 石室封土墳]이며, 앞트기식 돌방무덤[橫口式 石室墳]도 있다. 가장 주목되는 무덤은 1호분으로 둘레돌을 두른 지름 16m 크기의 봉분 안에 중앙 무덤길을 가진 돌방무덤이다. 무덤방의 규모는 북벽 2.25m, 남벽 2.35m, 동벽 2.75m, 서벽 2.6m이다. 높이 1.1m까지는 다듬은 할석으로 쌓았으며, 그 위로는 중심을 향해 둥글게 좁혀 쌓은 후 마지막에 큰 돌을 얹어 무덤방 천정까지의 높이는 2m가 되었다. 남쪽 벽의 중앙에는 무덤길을 만들었다.

북쪽 벽에 잇대어 동서 방향으로 길게 너비 1.1m, 높이 0.45m의 시상(屍牀)을 만들었다. 시상은 백회로 메움질을 하고 두텁게 회를 발랐으며, 이 시상의 앞쪽에는 북벽에서 2.2m의 간격을 두고 낮게 시상을 마련한 흔적이 있다. 북쪽의 시상 끝에서 바닥을 너비 20㎝, 깊이 10㎝로 파고 냇자갈로 채운 배수로가 무덤길에서 동벽으로 치우쳐 이어져 둘레돌까지 이른다. 경사를 오르며 분포된 다른 돌방무덤들은 규모가 작아진 것들로 시상이 여럿 중복되기도 하였다.

다른 양식의 무덤은 봉분에 제사 흔적이 있는 17호분, 돌방을 등고선 방향으로 배치한 16호분과 17호분, 무덤길을 서쪽으로 낸 9호분, 얇은 판석으로 천정을 덮고 무덤길을 중앙에 길게 낸 21호분이 있다. 5호분과 6호분처럼 앞트기식 돌방무덤이 동쪽 경사면에 분포하고 있다.

이 밖에도 누암리 산33번지와 산36번지 일대에는 고려 시기의 돌덧널무덤과 움무덤이 분포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돌덧널무덤의 바닥에 철을 만들 때 나온 철재(鐵滓)를 깔아 놓은 것도 있어서, 이 부근이 저명한 철의 생산지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출토유물]

유물은 1호분에서 순금 태환(太鐶) 귀걸이 1쌍·금동 가는 고리 3점·원판 수식이 붙은 귀걸이 1쌍·쇠손칼 2점·네모꼴 작은 덩이쇠[鐵鋌] 12점·신라 토기 여러 점이 출토되었다.

[현황]

2005년 3월 25일 사적 제46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지정된 면적은 56,739㎡이다. 지정 범위는 전체 고분군의 중심지 일부에 해당되며, 현재 주변 지역에 도굴되고 파괴된 고분들이 떼를 이루어 분포하고 있어서 확대 지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분군의 동쪽에 소규모 공원과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으나, 진입로의 확장과 전시 교육 공간이 더 필요하다.

[의의와 평가]

충주 누암리 고분군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557년(진흥왕 18) 국원소경을 설치한 것과 558년(진흥왕 19) 왕경 6부의 귀족과 호민들을 이주시킨 사실을 실증하는 고고 자료로 6세기 중엽 이후의 고분들이다. 이러한 사실은 출토 유물 가운데 대표적인 신라 굽다리접시인 단각고배(短脚高杯)라 불리는 짧은 굽다리 접시와 관련된다. 고려시대로 이어지면서 최고 귀족층의 무덤은 돌방에서 앞트기식을 포함하여 변화되었으며, 고려 초기에는 돌덧널무덤 또는 움무덤으로 변화된 양상이다.

이와 이웃해 있는 탄금대 토성장미산성 등은 백제 시기의 유적이며, 충주 고구려비는 고구려의 남하와 관련된 실증 자료이다. 충주 누암리 고분군은 삼국의 문화가 교차되면서 통일 지향의 중원 문화권으로 형성되는 핵심지대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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