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6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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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中里元新中古墳群 |
영어의미역 | Ancient Tombs in Sinjung-ri Wonsinjung Vill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중리 원신중마을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길경택 |
성격 | 고분군|움무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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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삼국시대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중리 원신중마을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신중리 원신중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개설]
충주는 고대에 삼국이 모두 지배한 고장이다. 백제는 충주를 처음으로 지배했으며, 근초고왕과 근구수왕 때 최대 판도를 이루었다. 고구려는 이미 400년 광개토왕이 신라 내물왕을 원조할 때 충주에 들어와 실제로 군대를 주둔시켜 지배했다는 설과 장수왕의 남하정책에 따라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할 때 충주에 들어왔다는 설이 있다. 신라는 550년 진흥왕 때 충주에 국원소경을 설치하고 신라의 6부 호민과 귀척 자제를 사민시켰다.
충주에 남아 있는 백제의 유적은 금릉동 고분, 칠금동 제철 유적, 탄금대 토성, 장미산성의 일부 유구를 등이 있다. 고구려의 유적은 충주 고구려비가 있으며, 신라의 유적으로는 충주 누암리 고분군이 있다. 신중리 원신중 고분군은 백제가 남긴 유적으로 추정된다.
[위치]
신중리 원신중 고분군은 서울쪽으로 난 구 국도 3호선의 왼쪽 원신중마을의 뒤편 숲이 우거진 독립 구릉에 위치한다. 가섭산의 동사면 자락이기는 하나, 산보다는 주덕평야 상에 있는 구릉이라 할 수 있다. 사방이 대부분 논인데 비해 이곳만 구릉을 이루고 나무에 둘러싸여 있어 평야지대에 떠있는 섬과 같은 느낌이다.
[형태]
고분의 봉분이나 돌방[석실] 축조에 사용된 석재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유구는 독립 구릉 내에 있는 경사진 밭 일대에서 확인되었다. 현장 조사에서 토기가 출토되었다고 하는 지점 등에서 석재를 하나도 확인하지 못하였다. 이곳에 무덤이 있었다면 돌방무덤[石室墳]보다는 움무덤[土壙墓]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
밭을 갈아 일구는 과정에서 토기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토기는 삼국시대의 붉은 색 연질 토기와 회청색 경질 토기가 수습되었으며, 백제 계열로 짐작된다. 특히, 연질 토기 항아리에는 문살무늬가 타날되어 있어 주목된다.
[의의와 평가]
신중리 원신중 고분군은 현재 밭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구릉은 소나무와 참나무 등으로 울타리처럼 덮여 있다. 이곳에서 수습된 연질 토기편의 타날 문살무늬의 경우 백제 계열의 토기에 종종 보이는 모습이라 주목된다. 그러나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두 점의 유물만으로 시기를 판단하기에는 성급하다. 주변에 대한 정밀한 학술 발굴이 요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