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6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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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孝里-遺蹟 |
영어의미역 | Relics in Sinhyo-ri Dwitgo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물산포지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신효2리 산 99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길경택 |
성격 | 목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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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피리형 백탄요|원형 흑탄요 |
건립시기/연도 | 4세기 전반~중반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신효2리 산 99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신효2리에 있는 삼국시대 요지 유적.
[위치]
신효리 뒷골 유적은 노은면 구 수룡초등학교 뒤편 진골저수지에서 무쇠점마을로 넘어가는 첫 번째 고개의 동쪽 사면으로 남쪽의 평풍산[395.6m]에서 뻗어내린 능선상에 위치한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중부내륙고속도로 건설 구간 문화 유적 지표 조사에서 충주박물관에 의해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경질 토기 조각이 수습되고, 주변에 할석이 흩어져 있어 고분군의 존재 가능성이 보고되었다. 그후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실시한 시굴 조사에서는 민묘 옆에서 회청색 경질 토기 조각과 돌덧널무덤이나 돌방무덤의 석재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할석군이 확인됨에 따라 50평 정도의 면적을 발굴 조사하였다.
2000년 11월 27일부터 2001년 3월 15일까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 의해 실시된 발굴 조사에서는 시굴 조사 때와는 다르게 유구가 주능선이 아닌 동남쪽 사면에 밀집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조사된 유구는 목탄요들로서 장축이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게 조성된 백탄요(白炭窯) 5기와 장축이 등고선 방향과 직교하게 조성된 흑탄요(黑炭窯) 2기이다. 흑탄요는 조사 대상 면적의 바깥쪽에서 확인되어 남쪽 사면 일부를 확장하여 조사하였다.
[형태]
고고학적으로 백탄요가 처음 조사된 곳은 울주 검단리 유적과 청도 전지리 유적이다. 처음에는 목탄요인지 민무늬토기가마터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으나, 연구를 거듭하여 백탄요라는 것과 그 세부 구조와 명칭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백탄요의 구조는 연소부(발화부)·소성부·연도부(굴뚝)로 구분되며, 연도부의 위치는 산의 정상부쪽을 향해 있다. 요는 적황색 또는 황갈색의 풍화암반층을 굴착하고 반지하식으로 조성되며, 바닥과 벽에 초본류를 점토에 섞어 발라서 보강한 경우와 생토면을 그대로 사용한 경우가 확인된다. 신효리 뒷골 백탄요는 모두 생토면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신효리 뒷골 흑탄요는 자연적인 입지 조건을 최대한 이용하여 대부분 급경사면에 조성되었다. 연소부는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었고, 소성부는 원형이나 장방형 또는 타원형이며, 연소실 내부의 바닥과 벽면은 그을음으로 인해 검정색을 띠고 있다. 연통부는 점토를 발라 인공적으로 만들거나 터널식으로 풍화암반층을 뚫어 조성하기도 하였다.
[출토유물]
1호 백탄요에서는 연소부에서 사립이 섞인 점토를 바탕흙으로 사용한 회흑색 연질 토기의 아가리편 1점이 출토되었다. 소성부에서도 집선문이 타날된 회갈색 경질 토기 바닥 조각이 출토되었다. 7개의 목탄요 가운데 유물이 나온 곳이 이곳뿐이다. 출토된 목탄을 수종 분석한 결과, 백탄요에서는 상수리나무류·졸참나무류·밤나무 등, 흑탄요에서는 졸참나무류와 밤나무가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신효리 뒷골 유적은 발굴 조사 후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모두 파괴되어 사라져버렸으나, 이곳에서 다량으로 확인된 백탄요는 고고학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백탄요는 고고지자기 연대 측정 결과, 5호-4호-1호순으로 축조된 것으로 확인되어 아래쪽에서 먼저 사용하다가 폐기한 후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대는 1호 백탄요는 AD340±30, 4호 백탄요는 AD330±15, 5호 백탄요는 AD325±20으로 절대 연대는 4세기 전반에서 중반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반해 흑탄요는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되어 운영된 것으로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