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690
한자 敬寧君墓
영어의미역 Grave of Prince Gyeongnyeonggu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음동마을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병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양식 원형분
건립시기/일시 조선시대
관련인물 경녕군
높이 약 200㎝
지름 약 600㎝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음동마을
소유자 전주이씨 종중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음동마을에 있는 조선 태종의 서자인 경녕군의 묘.

[개설]

경녕군(敬寧君)은 조선 태종효빈 김씨 소생으로, 이름은 이비(李示+非), 자는 정숙(正淑)이고, 부인은 청풍김씨(淸風金氏)이다. 학문에 밝아 양녕대군·효령대군·세종에게 글을 가르쳤으며, 태종·세종·문종·단종·세조의 5조에 걸쳐 왕실과 국정에 어려움이 있을 때 충성을 다하였다. 1419년(세종 1) 명의 사신 황엄(黃儼)이 오자 왕자를 대신하여 접대하기도 하였고 명에 사은사(謝恩使)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1430년 대광보국(大匡輔國)이 되었고, 세조가 즉위하자 충주로 피하여 여생을 마쳤다. 시호는 제간(齊簡)이다.

[위치]

주덕읍 제내리 풍덕마을 입구의 덕신초등학교를 지나 2㎞ 정도 직진하면 왼쪽으로 이상급의 묘가 나오는데, 그 옆에 위치한다.

[변천]

경녕군 묘는 실전(失傳)되었다가, 족보의 기록에 따라 후손이 묘를 찾기 위해 노력하던 중 장마로 인하여 묻혀 있던 묘비를 발견함에 따라 경녕군 묘가 확실하게 밝혀졌다. 1872년(고종 9) 고종이 승지를 보내 치제(致祭)하였다. 그 시기에 묘 앞의 석물이 갖추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

2단의 지대를 쌓고 그 위에 설치된 묘는 71㎝ 높이의 22장의 화강암 판석을 두른, 둘레 2,050㎝, 지름 약 600㎝, 높이 약 200㎝의 원형분이다.

[금석문]

구묘표는 비좌 직수의 형태로, 크기 42×16×124㎝인데, 비제는 훼손되어 거의 알아볼 수 없다. 신묘표는 지붕돌 102×77×50㎝, 비신 51.5×29×156㎝, 대석 105×78㎝의 크기이다. 전액(篆額)은 ‘태종대왕자(太宗大王子)’라 전서체로 쓰고, 비제(碑題)는 ‘경녕군삼한공시제간추봉령종정경비지묘(敬寧君三韓公諡齊簡追封領宗正卿裶之墓)’라 하였다. 17대손 이건영(李健永)이 다시 건립하였다.

[현황]

풍수적으로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이라 홍살문 앞쪽에 인공 연못을 조성하였고, 사우인 명덕사는 3칸 맞배지붕의 건축물로 묘역 올라가는 길 오른쪽에 있다. 묘역에는 210㎝ 정도의 망주석 1조, 215㎝ 크기의 무인상 1조, 193㎝ 크기의 문인상이 안면이 크게 훼손된 상태로 1조 있다.

한편 190㎝ 정도의 석등, 91×135㎝ 크기의 석양(石羊) 1쌍이 경녕군 묘를 지키고 있다. 경녕군 묘 앞에는 상돌과 향로석, 구묘표, 신묘표, 석양, 석등 등이 있다. 이중 문인상과 상돌을 제외한 나머지 석물은 최근 도난을 당하여 종중에서 새롭게 조성하여 세웠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7.01.24 한자 수정 [수정 전] 이비(李裶) [수정 후] 이비(李示+非)
이용자 의견
정** 경녕군의 휘자 裶를 示+非로 수정하여 주십시오. 강녕군의휘자는 衣변이아니고 示변입니다. 세종대왕및 한항분들이 모두 示변에 쓴글자들입니다. 즉항렬자가 示입니다.
  • 답변
  • 디지털충주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示변의 한자가 지원되지 않아 조합된 글자로 수정하였습니다.
2017.01.20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