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9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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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永吉 |
영어음역 | Yu Yeonggil |
이칭/별칭 | 덕순(德純),월봉(月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성호 |
[정의]
조선 중기 전주유씨 충주 입향조.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덕순(德純), 호는 월봉(月蓬).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유세린(柳世麟)이며, 아버지는 참봉 유의(柳儀)이다. 어머니는 노첨(盧僉)의 딸이며, 동생은 유영경(柳永慶)이다.
[활동사항]
유영길은 1559년(명종 14)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사간원정언을 거쳐 1562년(명종 17) 병조좌랑, 홍문관부수찬, 이듬해 사헌부지평, 사간원헌납, 성균관전적을 지내고, 1565년(명종 20)에 병조정랑에 이어 평안도도사가 되었으나 권신 이량(李樑)에 아부했다는 죄명으로 탄핵을 받아 이듬해 파직되었다.
1589년(선조 22)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가 1592년(선조 25) 승문원제조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방장 원호(元豪)가 여주에서 왜군의 도하를 막고 있을 때 격서(檄書)를 보내어 강원도로 소환하여 적의 도하를 가능케 한 실책을 범했다. 이듬해 도총관, 한성부우윤을 역임하고, 1594년(선조 27)에 진휼사가 되었으나 동인(東人)의 언관들에게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그 후 이이첨 등 대북 세력을 피하여 시골로 낙향할 뜻을 가지고 한강 상류 물길이 편리한 충주 목계로 왔으나, 목계는 당시 한강의 큰 포구로 장사꾼들의 근거지이므로 후손을 위하여 대소원면 완오리로 옮기고, 다시 괴산군 감물면 이담리로 이거하였다가 산수가 좋은 충주시 대소원면 팔봉리로 옮겨 정착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나자 호군(護軍), 연안부사(延安府使)가 되었으며 이듬해 호조참판이 되었다. 1599년(선조 32)에 한성부좌윤, 예조참판, 경기도관찰사로 전임했다가 이듬해 다시 예조참판이 되고 1601년(선조 34)에 성천부사(成川府使)로 부임하다가 죽었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월봉집(月峰集)』이 있다.
[묘소]
묘소는 충주시 살미면 세성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사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