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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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熙順 |
영어음역 | Yun Huis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윤희순의 본관은 해주(海州)로, 아버지는 윤익상(尹翼商)이며, 남편은 고흥유씨(高興柳氏) 유제원(柳濟遠)이다.
[활동사항]
윤희순은 1895년 단발령(斷髮令) 이후 한말의 저명한 척사사상가인 시할아버지 유중교(柳重敎), 의병론자인 시아버지 유홍석(柳弘錫), 남편 유제원(柳濟遠) 등 시택인 고흥유씨(高興柳氏) 집안이 의병에 가담하면서부터 함께 구국운동에 뛰어들었다. 단발령 이후 춘천(春川)에서 유중교의 제자인 이소응(李昭應)이 봉기할 때에 시아버지가 함께하면서부터 윤희순은 의병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노래인 「안사람 의병가」 등을 지어 춘천의병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춘천의병이 패한 후에 제천의 호좌의병진(湖左義兵陣)에 합류했을 때나 군대해산 후에 유홍석이 의병을 다시 일으켰을 때에도 한결같이 군자금을 모집하고 의병가를 지어 부르게 하는 등 의병들을 뒷바라지했다.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후 온 집안이 만주로 들어가 의병운동의 근거지를 만들려던 유인석을 좇게 되자 동행하여 뒷바라지했다.
유홍석와 유제원이 사망한 후에는 국권회복운동에 뛰어든 아들들을 뒷바라지했는데 그 중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장남 유돈상(柳敦相)도 일경에 잡혀 고문을 받다 순국했다. 1935년 자손들에게 훈계하는 글을 남기고 만주에서 서거했다.
[저술 및 작품]
의병가로 「안사람 의병가」, 「의병군가」, 「병정가」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82년 강원도 춘천시 남면 발산리 항골에 ‘해주윤씨의적비’가 세워졌고, 1983년과 1991년 각각 대통령표창과 대한민국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1990년 춘천시립도서관 후원에 동상이 세워졌으며, 1994년 무덤이 있던 중국 요녕성에 기념비가, 강원도 춘천 선영 묘역에 ‘애국선열윤희순여사사적비’가 각각 세워졌으며, 2002년 독립기념관에 윤희순어록비(2002)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