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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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田里內洞寺址 |
영어의미역 | Daejeon-ri Nae-dong Temple Site |
이칭/별칭 | 용두사지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 내동 432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길경택 |
성격 | 절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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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고려시대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 내동 432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 내동에 있는 용두사지로 추정되는 고려시대 절터.
[개설]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에서 간행한 『문화유적분포지도』에서는 관동대학에서 보고한 용두사지에 대해 소개하면서 내용이 불확실하다고 하였다. 용두사지라는 명칭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용두사는 말흘산(末訖山) 밑에 있다. 삼국시대 때에 북쪽 오랑캐가 자주 침노하므로, 이에 절을 짓고 탑을 세워서 기도하였다. 최언위(崔彦撝)가 지은 「법경대사 자등탑비문」이 있다”고 하였다.
[변천]
용두사에 대한 기록은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언급되어 있는데, 충주의 청룡사, 김생사, 엄정사, 억정사, 향림사 등과 더불어 탄압을 받았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조선시대 이전에 이미 사찰이 크게 번성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는 삼국시대 때에 북쪽 오랑캐가 침노하여 절을 짓고 탑을 세운다는 내용이 보이는데, 이는 『사자빈신사지』의 기록과 비슷하여 신뢰하기 어렵고, 법경대사비와의 관련 기사는 더욱 신뢰성을 잃게 만든다. 따라서 용두사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사찰로 인정할 수 있으나 아직 그 터가 이곳인지는 분명치 않다.
[위치]
충주에서 영덕삼거리 쪽으로 국도 19호선을 따라가면 국도 대체 순환도로와 만나는 지점이 나온다. 이곳에서 1㎞쯤 가면 오른쪽으로 배일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나오고, 이 길을 따라 대전리 내동까지 들어가면 마을 뒷산 중턱에 절골이 위치한다.
[현황]
사지는 현재 상하단의 축대로 구분되어 약 2,314m²(약 700평) 가량의 규모인데, 밭으로 이용되고 있는 절터에서는 자기편과 와편이 수습된다. 수습되는 기와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사찰 터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현재까지 밝혀진 자료로는 용두사지인지 확인할 수 없으나, 진부가 밝혀질 때까지 대전리 내동 사지라고 명명하여 서술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된다. 기록에 나오는 절터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되기에 임의적인 훼손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