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9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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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彌勒大院址 |
영어의미역 | Mireukdaewonji Temple Sit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장준식 |
성격 | 원지(院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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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고려 전기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절터.
[변천]
미륵대원지는 중원 미륵리 사지 발굴 조사 중 옛 미륵리 안말마을이 있던 자리에서 확인·조사된 사원 터로서, 대규모 건물지가 동·서·남·북으로 회랑처럼 길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미륵대원지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미륵대원(彌勒大院)’으로 추정된다.
미륵대원의 존폐 시기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으나 일연(一然)에 의하여 『삼국유사』가 저술되었던 고려 충렬왕대에 이르기까지 존속하고 있었던 듯하다. 『삼국유사』권1, 왕력(王曆) 1의 신라 아달라니질금(阿達羅尼叱今) 항목에, “계립령은 지금 미륵대원의 동령이다(鷄立嶺今彌勒大院東嶺是也)”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원(院)의 경영이 이루어졌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76년 미륵리 사지의 정비계획에 의해 사역(寺域)에서 철거된 안말마을에서 상당한 유구와 유물이 확인 되었다. 따라서 이곳에 대한 발굴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연차적으로 토지 매입과 정비 계획이 추진되었다. 미륵대원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1990년 7월 16일부터 1990년 11월 30일까지 청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대규모의 건물지가 방형으로 동, 서, 남, 북으로 회랑처럼 길게 연결되어 노출되었다. 또한 이들 건물지 사이의 중정(中庭)에도 건물이 있었고, 건물지들의 기단 석렬 바깥쪽에 축대를 쌓았던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남쪽 건물지의 기단과 축대 등 일부 지역에 대한 확인 작업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1991년 7월 30일부터 11월 22일까지 진행되었던 발굴, 조사도 청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미륵대원지의 남쪽 건물지에 해당하는 기단 남면과 배수구, 석축 등이 새롭게 노출되어 미륵대원지의 규모와 건물 배치 상태를 파악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 같은 발굴 조사를 토대로 미륵대원지의 건물은 2차에 걸쳐 중복 중수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한 잔존 유구가 있으나 규모와 형태를 파악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만 2차 건물 개축 때에 중간에 문지(門址)를 개설하였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발굴 조사를 토대로 각각의 건물지를 정리하면, 북쪽의 건물지는 2중으로 겹쳐 복잡하지만 회랑처럼 동서로 긴 형태를 유지하였고, 길이는 1차 건물이 31m, 2차 건물이 58m이다. 남쪽의 건물지는 정면 13칸의 대형 건물로서 기단 길이가 61.4m, 폭 7.4m이다. 동쪽의 건물지는 측면의 기단과 초석 등이 유실되어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서쪽 건물지는 성벽형(城壁形) 석축으로 폭이 좁고 기단 윗면의 상태가 불확실하여 건물지로서의 성격을 분명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로 이해되었다.
[의의와 평가]
미륵대원지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통하여 확인되는 유적으로, 중원 미륵리 사지와 함께 계립령을 중심으로 그 일대의 역사, 지리적 중요성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이를 통하여 고려시대의 정치, 사회는 물론 문화적 중심지로서의 사원(寺院)의 의미와 그 특성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